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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하루 8시간 노동 "못하나, 안 하나"
중앙관리자   등록일 2011-01-31 조회 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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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부터 5인 이상 2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40시간 근무제가 적용된다. 하지만 19세기에 외쳤던 '하루 8시간 노동'이라는 구호가 21세기를 사는 건설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와 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설노동자의 하루 근로시간은 9.6시간이다. 출퇴근 시간을 감안하면 아빠와 남편 노릇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연월차와 휴가, 주말도 없다.

이마저도 더 후퇴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5.6%로 떨어졌다. 전 산업 중 최하위로,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올해도 4대강 사업이 마무리돼 토목공사 발주가 대폭 줄어들면 건설업 경기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건설노동자에게 돌아간다. 굴삭기 노동자들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미뤄 뒀던 수급조절 문제 해결과 8시간 노동 정착을 위해 4월께 춘투를 준비하고 있다. 건설기계사업자들 모임인 대한건설기계협회 산하 지역단체에서도 방송차량 등으로 지역을 순회하며 투쟁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대한건설기계협회는 "8시간제는 굴삭기뿐 아니라 건설기계사업주들에게 가정과 삶의 질을 지켜 내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으로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할 과제"라는 입장이다.


ⓒ 매일노동뉴스

건설현장 8시간노동제 못한다?

건설현장 내 8시간제 논의는 건설기계임대차표준계약서가 처음 도입된 2008년부터 본격화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작성된 건설기계임대차표준계약서가 권장사항으로 도입되자 건설노동자들은 건설사에 8시간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풀기 힘든 과제로 남아 있다.

건설기계 중 노조조직률이 가장 높은 타워크레인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주 40시간 근무를 도입해 하루 8시간제를 실시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초과근무를 하면 별도의 수당을 받는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형틀목수와 대다수가 지입차주인 다른 업종의 건설기계노동자들은 조직력과 지역 특색에 따라 노동시간이 천차만별이다. 대체로 지역으로 갈수록 8시간제 논의가 활발하다. 수도권의 경우 장비가 많다 보니 지입차주인 건설기계노동자들이 서로 기계임대료를 낮춰 제 살 깎기 경쟁을 하는 곳이 적지 않다.

"우리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한다고 했을 때 다른 기계노동자들이 '혁명'이라며 말도 안 된다고 했어요. 아무도 실현될 거라고 믿지 않았어요."
이수종 건설노조 타워크레인 분과장은 8시간제를 요구했던 2007년 임금·단체협상을 회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만큼 건설현장의 장시간 노동 관행은 뿌리가 깊다. 관행 뒤에는 '최저가 낙찰제'라는 구조적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건설사들은 최저가 낙찰제 문제를 풀지 않는 한 8시간제 정착은 요원하다고 주장한다.

건설산업은 '발주처-원청(종합건설)-하청·중소건설(전문건설)-건설노동자' 등 하도급 구조로 이뤄진다. 원청은 최저가 낙찰제를 실시해 중소건설사들과 도급계약을 맺는다. 가격 중심의 최저가 낙찰제는 건설사 간 과당경쟁을 유발시켜 중소건설업체들이 PQ(입찰참가자격제한 사전심사 기준) 점수를 따기 위해 실적용으로 적자시공을 감수하도록 만든다. 적정가를 보장받지 못한 하청업체들은 노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건설인력을 직접고용하고 전문성이 높은 건설업체들이 도리어 수주를 못 받는 상황이 빚어진다. 이는 곧 부실공사로 이어진다.

중소건설사 모임인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공사기간과 자재비는 고정돼 있고 공사단가도 8시간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 노동시간을 늘려 적자시공에 따른 마진을 메울 수밖에 없다"며 "하청업체로서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려 공사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 노무비를 줄여야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노동자들이 8시간의 인건비를 받으면서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입찰 계약시 '물량'으로 하도급을 받는 것도 8시간제 정착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원청건설사 모임인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하도급업체가 계약을 맺은 물량에 대해 근로시간을 어떻게 적용할지는 업체들의 기술과 공법에 따라 자체적으로 운영할 사안이지 일괄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공사기한도 숙제다. 건설공사는 외부작업인 만큼 날씨가 좋지 않으면 진행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하청업체들이 공사를 중단한 일수만큼 공사기간을 늘릴 수도 없다. 정해진 기한에 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벌금은 물론 다음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건설현장 8시간노동제 안 한다?

노동계는 건설사들의 이 같은 주장이 "잘못된 구조로 인한 피해를 건설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대한건설기계협회에 따르면 이미 전남 광주에서는 기계 임대료 삭감 없는 8시간제가 실행 중이다. 건설노조도 강원도·울산·전북 건설기계지부 등에서 70% 정도 정착됐다. 8시간 노동제가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하청업체들이 기술을 개발하거나 적정 낙찰가를 고민하는 등 구조를 개선하는 식으로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며 "건설사들이 개선책에 대한 고민 없이 건설노동자들만 이윤을 착취당하는 봉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혁병 건설노조 강원건설기계지부장은 "그간 관행이라는 이유로 잃어버렸던 우리의 권리를 이제라도 되찾겠다는 것"이라며 "국가가 정한 표준계약서에 따라 8시간 품셈대로 일하고 정해진 임대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8시간 노동제는 결국 2시간의 인건비를 누구의 부담으로 할 것인가가 쟁점이다. 건설노동자들은 정해진 공사 품셈대로 8시간 일하면서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기를 맞추는 것은 협의를 통해 풀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건설사들은 그간 품셈 기준과 달리 관행에 따라 1일 10시간 기준으로 노무비를 지급한 만큼 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면 인건비도 삭감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무관심이 이 같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종합건설사 관계자는 "잘못된 구조를 만들어 놓은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애꿎은 건설사들과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꼴"이라며 "정부가 10시간 관행을 바꿀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4대강 사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 발주공사 중 표준계약서 작성비율이 지난해 66.9%에서 올해 20%로 급감했다. 정부가 발주한 4대강 공사에서조차 표준계약서가 아닌 일반계약서를 작성하는 실정이다. 수공이 발주한 4대강 공사의 경우 건설기계표준임대차계약서를 19%만 작성했다. 4대강 공사 구간이 아닌 곳의 표준계약서 체결비율(33%)보다 낮았다.

정부, 8시간 노동 '갈등 유발자'

노동계는 8시간제 정착을 위해 정부 발주 공공공사만이라도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 같은 의견을 토대로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에 한해 건설기계임대차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건설기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다음달 발의할 예정이다. 그간 현장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건설기계임대차표준계약서가 권장사항이라는 이유로 8시간제를 기준으로 한 표준계약서 작성이 정착되지 않고 있었다. 건설사들이 양벌규정을 악용하거나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해 교묘하게 8시간제를 피해 가는 경우도 많았다.

강기갑 의원실 관계자는 “표준계약서 법제화는 8시간제를 정착시키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며 "추가 예산이 들거나 새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권고를 공공공사에서 의무화하는 것인 만큼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힘을 보탰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0월 '하도급거래 공정화제도를 위한 검토' 보고서를 통해 "공정한 하도급 거래 문화를 정착하고 비대칭적인 원청과 하청의 시장지위와 경제력의 차이를 대칭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사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8시간 노동 정착은 시대적 과제”

직종별 적정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장현수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 사무국장은 "직종별 적정임금제를 도입해 낙찰률이 아무리 떨어져도 노동자는 품셈대로 제대로 된 임금과 8시간 노동을 보장받고, 사업주도 합법적으로 공사비를 확보하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건설사와 국토해양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들은 적정임금 도입이 예산증가를 초래하고, 공정위 권고사항을 법제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설현장 8시간 노동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다. 실제 일본(40시간)을 비롯해 호주(38시간)·네덜란드(40시간)·독일(39시간) 등 선진국에서는 건설노동자들도 주 40시간대의 노동을 한다. 독일·호주·네덜란드는 주말에 일을 하지 않는다. 일 없는 겨울에는 실업수당과 연월차 휴가가 보장된다.

대한건설기계협회는 "8시간 노동제는 최소한의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건설사들이 계속 제기될 산업적 과제를 회피할수록 분쟁과 안전사고가 발생해 오히려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루 8시간 노동' 투쟁의 역사


건설노조는 지난해 5월 울산시청 앞에서‘8시간 노동 쟁취’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매일노동뉴스

노동자들의 권리 가운데 하루 8시간 노동제는 각국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가장 오랫동안 싸워 온 핵심 노동권이다. 8시간 노동제 요구는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때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줄기찬 요구 끝에 영국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1847년 10시간 노동을 쟁취했다. 프랑스는 이듬해 2월 혁명 직후 10시간 노동제를 선포했는데, 이후 제헌의회에서 다시 12시간 노동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는 1863년 전국노동협회가 8시간 노동제를 결의한 데 이어 1867∼1870년 코네티컷 등 4개 주가 8시간 노동제를 실시했다. 그러던 중 1886년 5월1일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목숨을 건 역사적인 총파업이 진행됐다. 노동절 ‘메이데이’의 유래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8시간 노동제를 확립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일이다. 1차 세계 대전 후 1919년 베르사유강화조약에 이어 같은해 설립된 국제노동기구(ILO) 첫 회의에서 8시간 노동제가 채택됐다. 승전 국가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이었다.
실제로 전후 새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압박 분위기가 형성됐다. 권리를 보장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들이 공산주의를 선호하게 돼 새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승전국들은 ILO를 만들었고, 8시간 노동 외에도 실업에 관한 협약과 산전·산후 여성노동에 관한 협약·연소자의 야간작업에 대한 협약을 만들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사회주의단체가 8시간 노동제를 처음으로 요구했다. 1926년 6월10일 조선의 마지막 국왕인 순종황제의 출상일을 기해 발발한 6·10 만세운동에서도 공식 요구로 제기됐다. 53년에 근로기준법이 제정돼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됐고, 91년 ILO에 가입한 뒤에는 8시간 노동 국제협약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한국은 20년이 지난 2011년에도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펌 매일노동뉴스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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