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서 반대의견 잇따라 … 홍희덕 의원 "부처이기주의 안돼"
건설일용노동자의 퇴직금을 운용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는 고용노동부의 시도가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의 반대에 부딪혔다. 노동부는 퇴직금을 방만하게 운영해 지난해와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공제회를 감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너무 많이 나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가 노동자들의 돈을 강탈하려고 한다"는 비난도 나왔다. 지난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설근로자공제회, 공공기관 지정 관련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다. 이날 토론회는 홍영표 민주당 의원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주최했다. 올해 10월 말까지 적립된 건설근로자퇴직공제기금은 1조3천924억원에 달한다.
사진제공=건설근로자공제회 ⓒ 매일노동뉴스
◇공공기관 지정 오히려 역효과=발제를 맡은 심규범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면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측면이 더 강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면 운영의 투명성이나 공공성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를 포함한 건설업계의 관심사항이나, 고용개선 문제를 다루기 어려워진다. 심 연구위원은 이를 “손발을 묶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예컨대 건설근로자공제회가 공공기관으로 전환되면 기관평가를 받아야 한다. 기관평가 점수를 높게 받으려면 과도한 예산절감이나 인원 최소화를 추진하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심 연구위원은 “관련 당사자의 협조가 줄어들면 퇴직공제금 납부나 공제부금 인상, 공제대상 공사 확대가 힘들어진다”며 “공제사업 운영에 어려움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제기금을 납부하는 건설사업주가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년 동안 건설근로자와 관련한 연구를 했지만 노동부 입장에 반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공제회는 공공기관 지정예외 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공기관 지정은 건설산업 차원에서 자율적 운영을 유도하는 건설근로자 고용개선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제회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일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기관 지정, 노동부만 찬성=토론자들도 공제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건설업계와 노동계, 국토해양부가 반대의견을 냈다. 노동부만 찬성입장을 밝혔다. 권혁태 노동부 노동시장정책과장은 “퇴직공제금은 상호부조가 아니라 공적인 돈”이라며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면 경영공시 등을 통해 투명성이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 과장은 “2004년부터 공제부금은 강제가입 성격으로 변경돼 적용대상 공사가 대폭 확장됐다”며 “공제회의 공공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근성 건설협회 기술환경실장은 “현행 4천원인 퇴직공제부금은 정부출연 없이 사업주가 납부한다”며 “(공공기관 지정은) 비용부담만 사업주가 하고 공제회 운영은 정부가 한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반박했다. 김 실장은 “공제회는 지금처럼 민간자율로 운영하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개선하면 된다”며 “기구의 성격을 바꾸는 일은 시간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종태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사무처장은 “퇴직공제금은 사업주가 출연하지만 실제로는 건설노동자들의 돈”이라며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은 건설노동자의 사유재산을 정부가 강탈해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처장은 “공제회가 공공기관이 되면 운영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정작 건설근로자에게 필요한 사업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공제회 운영의 투명성·객관성을 높이려면 운영위원회와 이사회에 노조가 참여하면 된다”고 말했다. 진병준 한국노총 전국건설기계노조 위원장은 “건설근로자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는 공제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공기관 지정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교원공제회 등 유사한 공제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사례가 없다”며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공제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건설노동자에게 필요한 실제 업무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노동부가 현행 감독권한을 이용하면 충분히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운영기구에 노조나 노조가 추천한 인원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성호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공공기관 지정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도태호 국토부 건설정책관도 “기금운영의 투명성 강화를 공공기관 지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홍희덕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를 치르면서 공제회의 공공기관 지정에 대한 논의가 없었는데 갑자기 대두된 이유를 모르겠다"며 "부처 이기주의가 아닌 어떤 것이 과연 건설근로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펌 매일노동뉴스 한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