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건설노조 부울경본부의 박원대 사무국장의 글입니다.
최근 다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 대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노동부가 레미콘, 덤프노동자 등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며 이들이 가입되어 있는 건설노조를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관계법 위반으로 내몰아 탄압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경제위기속에서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생활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행님, 요즘 젤 어려운게 뭔데요?"


"그냥 먹고사는 거지 뭐"

"아니 그런거 말고, 노동기본권 없어서 어려운거 없냐구요?"

"모르겠다. 요즘 같아선 노동기본권이고 뭐고 일이나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럼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면 뭐가 좋을 것 같은데요?"

"음.... 일하는게 좀 낫지 않겠나?"

뒷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내가 만난 십수명의 조합원들은 최소 덤프트럭운전을 10년 이상 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나름 노조활동에 열성적인 분들이었다. 노동기본권쟁취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아마 대통령이 들으면 전문 시위꾼이라고 했을. 그런 분들이었다.
하지만 이분들은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노동기본권을 가져보지 못한 분들이다. 그냥 지금의 생활에 익숙한 분들이다. 소위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라고, 지금까지 평생을 노동기본권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나와는 거리가 먼 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묻는다는 것이 참으로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하였다.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노동기본권이라는 말을 모른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물론 지금 트럭을 운전하는 소위 특수고용노동자들 중에는 예전에 건설회사의 중기사업부라는 부서에 소속되어서 있던 분들도 계신다. 그런데 20여년 전의 건설회사가 어떤 곳인가? 비리와 폭력으로 대변되는 건설회사에 소속된 분들이 노동기본권이라는 말을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겨우 한두명, 많아야 다섯명 정도 되는 중기회사의 기사에게 지금도 그런데 10년 전에 노동기본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이처럼 노동기본권,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법적으로 보호받는 노동자가 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전혀 느껴보지 못한 분들에게 노동기본권이 없어서 불편한게 뭐냐고 묻는 것 자체가 너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임금 못 받아도 노동부에서조차 나 몰라라

3년 전이었던 것 같다. 막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였을 때였다.
조합원 한 명과 김해에 들렀다가 부산에 오는 길에 옆에 있는 건물을 보고 그 조합원이 하는 말이 10년 전에 이 건물 들어설 때 자신도 1,500만원 정도 이 건물에 투자했다는 것이었다.
내용인 즉슨, 10년전에 이 건물 공사를 할 때 덤프트럭을 가지고 일을 했는데, 처음 얼마간은 돈을 잘 주더니 차일피일 미룬 것이 2달이 되더니 급기야 덤프트럭으로 하는 작업이 다 끝날 때까지 노임을 받지 못했단다.
회사에 찾아가 사정도 하고 떼도 써보기도 했지만 결국 회사는 철수 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도 회사만 믿고 있었는데 막상 그렇게 당하고 보니 하늘이 노랗다고, 딱 죽고 싶은 심정인데 할 수 있는 건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거 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남들은 두달 동안 1,500만원 번다고 하면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그 돈으로 차량에 들어간 기름 넣고, 차량 할부금 넣고, 차 수리하면 손에는 250만원 정도 쥘 수 있었다. 새벽6시부터 꼬박 12시간, 14시간 운전하고 한달에 버는 돈이 그 정도다. 그나마도 경기가 좋을 때 이야기다.)
하지만 그도 별 소용없이 새로 지은 그 건물 앞에서 혼자서 소주 두병 비우고, 잘먹고 잘살아라 소리지르고 오줌한 번 갈기고 1,500만원으로 술마셨다 생각하고 털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도통 이해되지 않았던 얘기들이 노조활동을 하다 보니 눈 만 한번 돌려보면 그런 이들의 이야기는 허다하다.
액수도 적게는 150만원에서 많게는 1억이 넘는 돈을 그대로 회사에서 떼먹는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물론 덤프운전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웃기는 것은 다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부에 진정도 넣고, 임금체불 신고를 하고 하면서 일정정도 법적인 보호 장치가 있는데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은 노동부에서조차 그런 진정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런 일을 겪으면 노조를 찾는 것이고 그래야 사람들 모아서 생떼라도 써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노조가 있어 다행이라는 이야기들을 하신다.


건설비용 아끼려고 아까운 노동자 목숨 잡아먹는 건설자본

비단 임금체불뿐만이 아니다.
건설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많이 발생한다. 와중에 노동자들이 다치기도 하고, 차량이 크게 파손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듣기에도 아찔했던 사고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지만 이곳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되곤 한다.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나 책임은 없고, 그러다보니 사고방지를 위한 안전 대책에도 소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더 답답한 현실은 정작 이런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 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 현장에서 사고를 당했으면 일반적으로 산재처리 하고, 차량이 파손되었으면 수리해주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조치는 없이 그냥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건설현장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신호수 없이 후진하다가 지반이 내려앉아 차량이 전복되거나, 현장에서 작업로를 너무 경사지게 설계해서 그대로 미끄러져 사고가 나거나, 강이나 바다에 매립작업 중에 제대로 지반을 다지지 않아 바다에 차가 빠지는 일, 짐을 너무 많이 실어 커브 돌다가 그대로 넘어지는 일 등 다양하고 끊임없는 사고가 나는 곳이 바로 건설현장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들은 모두 건설회사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흙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옹벽이나 지지대를 건설회사에서 설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냥 방치하다가 사고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로 돌아간다.
그중에도 덤프트럭이나 레미콘 운전기사들 같은 경우는 개인사업자로 되어 있어 사고가 나서 다치던가 죽더라도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고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무늬만 사장! 월급 받고, 해고당하는 사장이 세상에 어딧노!

덤프트럭 노동자들도 원래는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초기에 워낙 장비가 비싸고(지금도 비싸지만) 수량도 이 없다보니 개인이 소유하기 어렵고 건설회사에서 구입하여 관리하였다.
그런데 차량대수가 증가하고, 또 건설 산업 자체가 워낙 일이 많았다 적었다 하니, 회사에서는 차량유지에 드는 비용, 회사의 자산증가에 대한 부담. 노동자의 고용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러다가 80년대 후반 들면서 건설경기가 호황이 되니 이때다 싶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차량을 모두 기사에게 되팔게 되었다.
이때 회사에서 하는 소리가
'김기사야, 니 생각해봐라. 요새처럼 이렇게 일이 팽팽돌아가는데 니가 차 가지고 있으면 몇 년안에 본전뽑고도 남는다. 니 언제까지 이리 살끼고? 니도 큰소리 한번 쳐봐야지? 조만간에 회사에서 중기부 없앤다던데 그리되면 니는 뭐 먹고 사끼고? 내가 니한테만 특별히 싸게 차 줄 테니까 니도 이제는 어깨 좀 펴고 살아야 안되겠나?'
그럼 그 김기사는 좀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차를 사고, 사업자등록증을 내게 되면서 그 김기사는 빚더미 김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김기사는 김사장이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나는데, 여기저기서 김사장, 이사장, 최사장, 박사장, 강사장......들이 나온다. 이렇게 나온 사장님들만 몇 십 만명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요즘 말하는 특수고용노동자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과연 이사람들이 진짜 사장님일까?
자영업자라 하면 어떤일을 어떻게 할지 최소한의 선택권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지 않다. 몇시까지 현장에 출근해야 하고, 마음대로 퇴근도 못한다. 게다가 그 돈이라는 것이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을 수 밖에 없다. 작업지시를 현장에서 받고,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해고되거나 임금이 깎이게 된다. 게다가 현장에서 원하면 불법이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고, 회사에서 탈세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말그대로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노동자인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자등록증이 이들의 족쇄가 된다. 퇴직금은 고사하고, 임금이 체불되더라도 어디가서 하소연도 할 수 없다. 겨우 한다는 것이 민사재판인데 그것도 일상적인 구두계약이 만연화된 건설현장을 상대로 이기기 쉽지 않다. 그리고 체불은 아니더라도 어음으로 임금을 받는다. 그나마 아예 안 받았으면 말이라도 하지만 어음으로 받는 경우는 웃기지도 않는다. 어음으로 주고 어음을 준 회사가 도로 어음깡을 해준다. 그러면 100만원을 현금으로 받을 것이 90만원 80만원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회사는 앉아서 돈을 챙긴다.


스스로 모여서 만든 노동조합, 이제와 불법이라니

이렇게 몇 십년을 지내다가 겨우 덤프연대라는 것을 만들고 건설노조에 들었다.
임금체불당하면 어차피 정부에서 해결안해주니까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모여서 싸우고, 사고가 발생하면 또 모여서 싸우고, 그 동안 혼자서 해결못했던 것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 만들어 몇 년은 그나마 좀 나았는데....
이제는 정부에서 이것마저 불법이란다.
노동조합에 들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으니 그 노동조합은 임의 단체라고 하는 것이다. 건설자본의 횡포로 억지 춘향격으로 사장이 되고, 그 횡포와 부당함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 만들었더니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하고, 그럼 정부에서 최소한 보호 장치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예전에 예순이 다된 어떤 조합원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행님, 노조 만드니까 뭐가 좋습니까?"
이 행님(나에겐 아버지뻘인데....)이 가만히 있다가 하는 말이
"옛날에는 자식같은 공사과장(원청의 현장관리자)이 반말하고 욕하고, 어이~ 하고 부르더니 노조에 드니까 존대말도 꼬박꼬박해주고, 욕도 안해서 그게 좋더라"
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만든 노동조합이 불법이라고만 말하면서 노동조합 없앨 궁리만 하지 말고 노동조합 없어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드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