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

1톤 넘는 거푸집 부속자재 떨어져 '압사'
건설노조 “전문신호수 배치하라!”

△서울 동대문구 전농2동 삼성레미안 아파트 사고현장 전경. 사진=건설노조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30일 오전 8시 경 서울 동대문구 전농 2동 삼성레미안 2차 아파트 공사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이용해 갱폼 하역 작업을 하던 중 올라가던 갱폼이 뚝 떨어지면서 밑에 있던 건설노동자 1명(47세)이 즉사했다.

크레인에 묶어 공중으로 들어 올리던 1톤이 넘는 거푸집 부속자재가 떨어져 내리면서 밑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를 덮친 것이다. 위험이 상존하는 건설현장에서는 대형 중장비 사용에 앞서 안전관리자가 입회해야 하지만 사고 발생 현장에는 전문신호수도, 안전관리자도 없었다.

타워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가동될 경우 유해위험기구에 속하므로 안전관리 작업자 입회 하에 전문신호수를 배치한 후 작업을 해야 한다. 인건비 절감과 공기 단축에만 열을 쏟는 건설사들에게 현장 노동자들 안전문제는 뒷전인 것.

지난달 18일 화성시 터널공사장 1,500톤 암벽이 붕괴돼 3명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데 이어, 24일 서울 구로동에서 타워크레인 붕괴로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건설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셈이다.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고 있지만 건설현장 안전대책은 무방비다. 현장 관리자도 출근하지 않는다. 1~2명이 나오더라도 현장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지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건설현장에서 휴일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산업안전문제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에 전문신호수 육성 배치가 시급하다고 보고 지난해 12월부터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건설현장에 특별안전교육을 받은 전문신호수가 책임감을 갖고 역할만 해도 사망사고가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덤프, 타워크레인 등 일부 현장에 신호수가 있는 곳도 있지만 그나마 자격조건 없는 사람들이 책임감 없이 자리를 메우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업체들은 비용을 줄이기에만 혈안이 돼 법정 안전관리비 조차 집행하지 않고 있다.

건설노조는 또 안전관리자들이 있더라도 비정규직이어서 현장 안전문제를 있는 그대로 제기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노동조합은 안전파트는 현장 소장 지시와 감독을 받지 않도록 본사 직할체제로 하고, 비정규직이 아닌 상용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덤프와 타워크레인 등을 가동할 경우 전문신호수가 제대로 역할만 해도 사고의 80~90%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건설노조 주장이다. 건설노조는 지난해 12월부터 건설현장 전문신호수 배치를 요구했다.

당시 노동부 등 정부 관련부처는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않은 채 유야무야 시간만 보냈다. 그동안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 사망사고는 줄지어 일어났다. 지난 5월 말 건설노조는 총파업을 결행하면서 건설현장 전문신호수 육성과 배치를 거듭 요구했다.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하자 노동부는 6월 중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 담당 국장과 과장, 실무자 모두 교체된 상황이다. 실제 건설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실태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이 무슨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건설노조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제도를 활성화해 안전 사각지대에 있는 건설노동자들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회사가 고용한 이들과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채 활동하는 지역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이 있다.

문제는 사고가 발생했거나 위험한 현장 상황이 보고될 경우 감독관이 출동해도 사업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는 것. 노동부는 “사적 영역이고, 기업 정보 등 회사 지적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감독관들 현장 출입권 보장을 등한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명예산업안전감독관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산재가 현격히 줄었다. 강력한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즉각 사업주를 구속한다. 또 경미한 사고에 대해서도 4천만원 이상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사고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려고 했을 경우 엄청난 처벌이 뒤따른다. 사망만인률(인구 1만 명 당 산재율)을 보면 영국 0.07%, 미국 0.53%, 독일 0.26%, 일본 0.03%, 한국 1.47%다. 산재사망률이 낮은 나라들 공통점은 현장 산업안전보건활동에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단협 체결 시에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건설현장을 방문한 건설노조 간부가 “산재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데 현장에서 은폐를 시도하지 않는가?”라고 물었을 때, 영국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사고 발생 시 숨길 생각은 아예 안 한다, 은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모든 노동자들 산업안전보건 문제를 노동조합과 함께 하는데 그들이 가만있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홍미리기자/노동과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