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하도급·장시간노동 개선되지 않아"
건설노조 조합원 실태조사 …"건설업 특성 맞는 최저임금제, 고용보험 도입 필요"


건설현장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단계 하도급의 원인을 제공했던 시공참여자제도가 지난해 폐지됐음에도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또 건설 노동자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있어 건설업이 장시간 노동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노조(위원장 백석근)는 11일 오후 공공운수연맹 회의실에서 ‘건설노조 조합원 생활·임금실태 조사결과’ 발표 공청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7월부터 8월까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조합원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다.

김승환 건설노조 수도권본부 사무국장은 “건설노조가 산별교섭을 진행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진행된 것”이라며 “조합원 임금과 고용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문조사에는 굴삭기(3.6%)·덤프(29.2%)·레미콘(7.0%)·외선전기상용(7.9%)·외선전기일용(5.3%)·타워크레인(6.2%)·토목건축(24.5%)·플랜트(16.2%) 등 7개 직종 조합원 1천206명이 응했다. 사무직을 제외한 건설현장노동자들의 임금·생활 실태를 포괄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균 연령 40대, 다단계 하도급 여전

조사에 따르면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고령화는 높은 수준이었다. 건설업 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40대 였는데 46.2%를 차지했으며, 50대(29.5%)·30대(22.7%)가 다음순이었다. 20대 종사자는 1.7%에 불과했다. 직종별로 굴삭기·덤프·외선전기일용·플랜트 종사자는 40대가 가장 많았고, 외선전기상용·타워 종사자는 30대, 토목건축은 40대와 50대 이상이 모두 많았다.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도 여전했다. 불법다단계 하도급은 토목건축현장 뿐만 아니라 굴삭기·덤프 현장에서도 심각했다. 굴삭기 노동자들은 발주처로부터 물량을 받기까지 최대 4단계를 거친다고 대답했다. 덤프의 경우 3단계가 40.3%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4단계(25.6%), 2단계(23.8%), 5단계(5.9%) 순이었다.

지난 2006년 건설운송노조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실시한 덤프운송노동자들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와 비교해보면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에도 운송물량을 받기까지 4단계를 거친다는 응답이 44.3%로 가장 많았고 3단계 40.5%, 2단계 9.0% 순이었다.

일감을 확보하는 방식도 개인인맥을 통한다는 응답이 굴삭기(85%)·덤프(50%)·토목건축 기능공(76.9%)·토목건축 조공(60%) 등 전 직종에 걸쳐 매우 높았다.

토론자로 나선 윤애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은 “3단계 이하 비중이 증가한 것은 성과지만 다단계 하도급 문제는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운수업체가 일정 비율 이상의 운수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도록한 운수노조의 제도 개선을 참고할만 하다”고 말했다.

10시간 노동 관행으로 굳어져

건설현장에선 하루 10시간 노동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었다. 노조가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해 활동해왔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하루 10시간 노동을 한다는 응답은 굴삭기(68.3%)·덤프(59.6%)·토목건축 기능공(56.5%)·토목건축 조공(63.3%) 부문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외선전기일용직은 하루 8시간을 작업한다는 응답이 58.2%로 높았다. 외선전기상용직은 하루 작업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응답이 47.7%로 높았다. 타워크레인은 토요일의 경우 오전에만 근무한다는 응답이 95.8%였다. 타워크레인의 경우 단체협약에 따라 주44시간 노동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플랜트는 지역에 따라 노동시간 편차가 존재했다. 포항과 울산지역은 하루 8시간을 일한다는 응답이 각각 94.5%, 81.9%인 반면 충남은 11.8%에 불과했다. 충남은 10시간이라는 응답이 58.8%였다.

유보임금·어음 등으로 만성 체불

임금이 늦게 지불되는 이른바 ‘유보임금’ 관행도 심각했다. 유보임금 관행은 건설노동자들의 수익을 불안정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어서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굴삭기 노동자들은 임대료 지급시기가 일을 마친 후 90일 뒤에 받는다는 응답이 무려 31.6%에 달했다. 60일도 23.7%였다. 덤프는 30일 이내에 운송료를 받는다는 대답이 2.4%에 불과했고, 30일에서 60일 사이가 47.1%, 60일에서 89일 사이가 33%였다. 토목건축 분야에서는 임금 유보기간이 30일 이상이라는 대답이 41.4%로 가장 많았다.

이처럼 기계 임대료·운송료·임금 지급일이 늦어지면서 아예 돈을 받지 못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굴삭기는 응답자의 70%가 최근 3년 동안 아예 받지 못한 임대료가 있다고 답했다. 체불된 금액이 1천만원 이상이라는 대답이 40%나 됐다. 덤프도 운송료 체불경험이 있냐는 물음에 95.2%가 그렇다고 답해 운송료 체불이 일상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토목건축 노동자의 21.5%도 최근 3년 동안 임금을 아예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굴삭기·덤프 등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어음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임대료를 현금과 어음을 함께 받는다는 응답이 61.1%였는데, 어음으로 받을 경우 일수는 최하 60일에서 최장 180일까지였다. 덤프도 54.6%가 현금과 어음을 함께 받는다고 답했다.

덤프노동자 절반은 신용불량자 경험

이러다 보니 신용불량자가 된 적도 있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굴삭기 노동자들은 차량 가격이 평균 8천500만원으로 고가이다보니 대부분 융자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을 구입하기 위해 융자를 받은 비율이 85.7%였으며, 평균 융자금액은 4천2백만원이었다.

덤프도 차량을 구입할 때 71.5%가 융자를 받았다고 답했는데, 융자액수는 3천만원 이상이라는 응답이 40.7%로 가장 많았다. 레미콘 노동자도 58.6%가 차량구입시 융자를 받는다고 답했다.

만성화된 운송료 지급 지연, 어음지급 관행, 차량 구입 융자 등으로 인해 덤프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3%가 신용불량자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레미콘노동자의 24.4%도 신용불량 경험이 있었다.

건설노동자 특성 맞는 제도 필요

심규범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합원들을 상대로한 조사이기 때문에 실제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보다 낫게 측정된 측면이 있다”며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제에 나선 김승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건설기계부문에서 융자 비중이 높은 상태에서 임대료가 체불되거나 어음이 지급되면 수입과 지출 시점의 불균형을 낳는다”며 “건설업에 만연돼 있는 어음지급을 금지하고 계약기간 동안 일정한 시기를 정해 현금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전 직종에서 10시간 노동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며 “8시간 노동제 확립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일용직에게도 휴일노동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임금체불에 대해서는 노동부에 강력한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건설업 특성에 맞는 고용보험제도의 보완을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종식 공인노무사(공인노무사사무소 의연)는 “2006년 대대적인 투쟁을 통해 건설산업기본법, 근로기준법 개정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며 “제도개선 성과를 현실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현장 적용실태를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규범 연구위원은 “미국 뉴욕주의 경우 직종별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며 “이로 인해 발주자에서 원수급자·하수급자를 거쳐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적정공사비, 노무비를 삭감당하지 않고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