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주최 기능경기대회는 국내에서 처음

지난 15일 오전 9시 포항시 남구 호동에 있는 근로자종합복지관. 복지관 운동장에는 11동의 천막마다 작업대가 놓여 있었고 안전모를 쓴 4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날 건설산업연맹(위원장 남궁현)은 연맹 설립 이래 처음으로 전국건설기능경기대회를 개최했다. 연맹 관계자는 "건설현장의 숙련된 노동자들이 '노가다'나 '일용 잡부'가 아닌 '기능공이라는 인식을 사회에 심어주기 위해 이번 대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노조가 기능경기대회를 연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서울엔 비가 내렸지만 포항엔 ‘하늘이 도운 듯’ 날씨가 맑았다. 연맹 교육훈련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마성희 플랜트건설노조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개회식에는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과 배석도 노동부 포항지청장·포스코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오랜만에 직접 만드는 거푸집

대회는 용접·배관·형틀목공 등 3개 종목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형틀목공 선수들에게는 도면에 그려진 ‘원기둥 거푸집’의 현치도(실제 치수로 상세하게 작성한 도면)를 작성하고 4시간 안에 완성하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거푸집은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구조물을 말한다.

“자 이제 9시30분부터 경기가 시작됩니다. 담배 한 대씩 피우시고 화장실도 다녀오세요.”

심사위원인 박태휘 기능장이 마지막으로 주의사항과 함께 10여분의 쉬는 시간을 줬다. 운동장에서 진행된 형틀목공부문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19명의 형틀목수노동자가 참가했다. 선수들에게 지급된 것은 미국산 소나무 각목 26개와 켄트지·합판, 그리고 못 160개가 전부였다. 전자공구는 각자 또는 지부별로 구비했다. 4시간 후 이 나무들이 거푸집으로 완성돼야 한다.



1번 참가자 장남인(53)씨는 다른 참가자들보다 1시간이나 빨리 거푸집을 완성했다. 이날 형틀목공부문에서 3위를 차지했다.

5번 참가자 강인석(44)씨가 열심히 대패질을 했다. 전동대패가 지급됐지만 손으로 작업해야 더 정교하게 나무를 다듬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 건설현장에서 목수들이 거푸집을 직접 만드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하지만 목수라면 기본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원형으로 거푸집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아요.”

요즘엔 철로 만든 거푸집이 완성돼 나오고 목수노동자들은 이것을 조립하는 일을 주로 한다.

팀워크 중요한 용접·배관부문

같은 시간 근로자종합복지관 3층에서는 배관공 10명이 필기시험을 치렀다. 주어진 평면도면을 보고 입체도면을 그리는 것이다. 샤프펜슬과 자를 들고 도면을 그리는 노동자들의 표정이 고3 수험생 못지않았다.


7번 참가자 김종웅(35)씨가 용접을 하고 있다. 용접공들은 엄청난 소음과 강렬한 빛을 이겨내야 한다.

플랜트 현장에서 쓰이는 기능은 용접·배관·제관·비계·기계·보온 등 매우 다양하다. 이날 경기가 치러진 용접·배관부문에는 2인1조로 총 20명의 노동자가 출전했다. 배관공은 도면을 작성해 파이프를 길이에 맞춰 절단하고 각도를 맞춰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배관공들이 필기시험을 치를 동안 용접공들은 용접용 헬멧의 유리를 깨끗이 닦는 등 준비작업을 했다. 도면 시험이 끝나자마자 출전자들은 곧바로 그라인딩 작업에 들어갔다.

“용접하기 전에 파이프의 표면에 있는 기름과 먼지를 제거해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입니다. 용접할 때 이물질이 있으면 결함이 생기거든요.”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이상준 포항건설기능학교 교감(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 수석부지부장)의 말이다. 불꽃이 여기저기 튀고 ‘윙’하는 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복지관 뒤편에 있는 포항건설기능학교 작업실에서 진행된 용접·배관 경기에 출전한 10개팀은 절반이 전기를 이용한 아크용접을 했고, 나머지 절반은 아르곤가스용접을 했다. 본격적인 용접에 들어가자 강렬한 빛이 발생했다.

동료들의 경기모습을 지켜보던 김광년(47)씨는 “빛의 양이 적다뿐이지 핵폭탄 터질 때와 비슷한 종류의 빛”이라며 “보안경을 쓰지 않고 오래 쳐다보면 실명할 수도 있다”고 주의를 줬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이날 참가자들은 모두 주어진 시간이 촉박했다고 입을 모았다. 3개 종목 모두 30분씩 추가시간을 줬지만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팀들이 많았다. 대부분 기능대회에 처음 출전한 노동자들이라 긴장도 많이 했다. 형틀목수 부문에 출전한 황현순(36)씨는 결국 기권했다.

“장모님이 1등하고 오라고 했는데 큰일이네요. 처음에 현치도를 그릴 때 각을 잘못 잡았어요. 아쉽지만 내년에 다시 참가해야죠.”

참가자 중 가장 젊은 그에게 거푸집을 만드는 일은 생소했다. 특히 용접·배관부문 문제는 난이도가 너무 높아 감당하기 힘들었다. 심사위원들은 ‘중상급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오후 3시30분께 모든 경기가 종료됐다. 형틀목수부문에서 1명, 용접·배관부문에서 7명의 심사위원들이 약 1시간에 걸쳐 꼼꼼하게 심사를 진행했다.


용접부문 심사위원들이 손전등까지 비춰가며 꼼꼼하게 용접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우리는 '노가다' 아닌 '기능인'

제1회 전국건설기능대회 우승은 김연수(43·용접·플랜트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민천길(48·배관·플랜트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이흥우(51·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씨가 차지했다. 최고의 팀워크를 자랑한 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의 이승만(38·배관)·황성기(44·용접)에게는 작품상이 수여됐다.


제1회 전국건설기능경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참가자들. 왼쪽부터 이흥우(51)·김연수(43)·민천길(48)씨. 이들에게는 금메달과 함께 상금 50만원, 여행상품권이 수여됐다.

배관공을 한 지 25년 됐다는 민천길씨는 “이런 대회는 처음인데다 시험 난이도가 높아 긴장을 많이 했다”며 “25년을 일했어도 기능공 대우를 못 받고 일률적으로 임금을 받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연수씨도 “뛰어난 기능공이 많았는데 운이 닿은 것 같다”며 “발전소·상하수도·화학공장을 다 우리손으로 만들지만 건설 기능공들을 ‘노가다’로 보는 사회 인식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현장이 바뀔 때마다 테스트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용접공들에게 시험을 일상이다. 안산에서 내려왔다는 이흥우씨는 “노동자들이 기술을 향상시킬수록 건설업체에도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법은 바뀌었지만 아직 건설현장의 탈의실과 화장실도 제대로 안 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건설기능경기대회 수상자 명단

△플랜트 용접부문
우승:김연수, 2위:김종웅, 3위:이상구
△플랜트 배관부문
우승:민천길, 2위:장만식, 3위 박준상
△플랜트 작품상
이승만·황성기
△토목건축 형틀목공부문
우승:이흥우, 2위:오창호, 3위:장남인, 4위:남기연, 5위:곽기준, 6위:정일우, 7위:이경헌

[펌 매일노동뉴스 조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