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열사 1주년 추모제를 맞으면서......


오금용(인천건설지부 전기분과 조직부장)

형이 머물던 자리는 인천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정작 보고픈 형의 얼굴은 영정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못내 저희들 가슴을 아리게만 합니다,
작년 인천전기원 파업이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의 희생이 없으면 이 싸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며
형은 남은 동지들에게 형이 가진 전부를 주고 가셨습니다,

형....
형에게 저희들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너무나도 형에게 해줄 것도 없을뿐더러
어머님, 아버님 마저도 챙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형에게 죄송한 생각, 미안한 생각만
가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형이 무얼 원하는지 무얼바라는지 알고 있습니다.
위기에놓인 인천 전기분과 조직 다시금 세우고 인천에 민주노총 깃발을 한껏 휘날릴수 있는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게 형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과제라고 생각하고 인천 전기원 조직을 다시금100명이 넘는 조직으로 만들고, 주5일제를 우리와 단협맺은 사업장에 정착시켜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게 형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 믿고 있습니다,
형... 힘들때에만 형을찾는 저희들 보듬어 주시고 힘주시는 형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약속합니다.
기필코 승리할것을, 기필코 민주노총의 선봉에 설것을, 그리고
이 약속 분명히 지킬것을 약속합니다.




■ 회고문

정해진 열사의 염원을 받아 ...

정 광 수 (전,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회 위원장 / 현, 전북지역본부장)

07년 2월부터 시작된 인천건설지부 전기분과 동지들의 단체협약 쟁취를 위한 투쟁은 10월 27일 정해진열사의 분신사망으로 비롯된 열사정국에서 11월 8일 사측과의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공식적인 마무리를 한다.
단체협약의 요구안을 만들고 준비한 시기부터 1년여의 투쟁을 이제 다시 1년이 지나 회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나에겐 고통스럽다. 하지만 열사를 생각 하면서 열사가 남기고간 뜻을 우리가 얼마나 이어 받아 배전현장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였느가 반성하며 정해진 열사 앞에 죄인된 몸으로 다시 선다.

작년 6월 19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이 종료되고 한전 인천사업본부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시작으로 파업투쟁은 시작되었다. 인천지역의 배전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파업에 참여하였고 투쟁의 의지 또한 드높았다. 몇 일이면 승리하고 현장으로 복귀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달이 넘도록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요구라는 것이 노동조합의 인정, 주 44시간 노동, 노동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문구화한 단체협약 체결이었기에 지극히 기본적이었다. 타 지역에서는 이미 적용되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사용자들이 아무리 노동관계법을 모르는 무식한 놈들이어도 세상에 상식이란게 있지 않은가? 무식한 사용자 놈 들 열심히 투쟁으로 가르쳐서 상식이 통하는 배전현장을 만들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현장을 만들자라며 투쟁한 것이 장기투쟁이 되고 만 것이다.
사람이 죽어서야 억지로 단체협약에 싸인을 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이런 상식도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내가 지금 살고 있구나. 여기까지 생각하면 경악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파업이 한 달쯤 지난 장마가 한창이던 7월 말쯤일까?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인상 좋아 보이는 동지가 나타났다. 내가 보자 엷은 미소로 답한다. 아마 미리 들어서 나를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
석원희 분과장에게 살짝 물어보니 파업 중인걸 모르고 어머니가 계시는 미국에 있다 귀국하여 파업소식을 듣고 농성장에 합류한 동지라는 설명이다. 그는 파업농성장에 합류 한 이후 계속 파업에 결합하고 있으며, 장기화되고 있는 파업으로 일부 동지들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늦게 합류한 점을 항상 미안해 하면서 동지들에게 힘을 주는 동지란 말을 들었다.

그 후 정해진 열사는 파업투쟁에 적극적인 자세로 동지들을 격려하면서 실천한 동지였으며 파업 대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추석 명절엔 후배들에게 걱정말라며 집에 보내고 농성장을 지키는 일을 자처하고 나섰다. 딱히 명절이라 해도 갈 곳이 없어 정작 위로 받아야 할 동지가 정해진 열사였다는 사실을 열사가 가신 뒤에 알게 된 우리는 어떻게 정해진 열사의 큰 뜻에 보답해야 하는가?

장기투쟁으로 투쟁의 동력은 약화되고 전국 전기원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인천에서 정리하겠다라고 장담한 사용자 대표 유해성은 농성장 침탈과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노조 죽이기를 공격적으로 전개하던 상황에서 그대로 노조가 패배한 투쟁이었다면 과연 우리 배전현장에서 노조는 과연 얼마나 유지될 수 있었을까?

사람이 죽어야 상식이 억지로 적용되는 사회에서 열사는 자신이 불꽃이 되어 배전현장의 노조 깃발을 지켜냈다. 인천 전기원노동자들의 파업투쟁 이후 부산, 경남지역의 노조 깃발이 세워지고 경기 북부지역에서도 사용자들의 큰 저항 없이 조직이 확대 되었다. 또한 기존지역의 08년 임,단협이 예상보다 빨리 마무리 된 것도 정해진 열사가 남아있는 전국 동지들에게 배전현장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고 노동해방의 염원을 실현할 토대를 남겨주고 간 것이다.

열사가 가신지 1년이 된 지금 우리는 열사의 염원을 배전현장을 비롯한 건설현장에서 실천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였고 얼마나 투쟁하였던가?
우리의 가슴에 열사를 묻고 아직도 조직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배전현장의 노동자들과 건설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투쟁하여 진정 열사가 살고 싶었던 노동이 즐거운 세상,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현장, 노조활동을 해도 사용자들이 함부로 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투쟁 할 것을 다시 한 번 열사 앞에 다짐해본다.

정해진 열사여 동지의 염원을 남아서 살아있는 동지들과 이루겠습니다.


故정해진 열사의 영전에 부쳐...


조병규(인천건설지부 전지부장)

벌써 1년입니다.
정말 많은 날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형을 생각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수 많은 전기 조합원들과 동지들이 그러했을 겁니다.
열사를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나태해지고 힘에 부칠 때마다 열사를 생각하며 또다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형이 분신하시고 돌아가시던 날의 집회와 투쟁으로 아직도 많은 동지들이 재판정에 서고 치러야할 댓가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석근 위원장을 중심으로 ‘전국건설노동조합’으로 뭉쳐있는 만큼 잘 헤쳐 나갈 것입니다.

가장 궁금하시고 기뻐하실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힘든 파업투쟁과 열사투쟁을 감당했던 인천 전기원들의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도 자랑스러운 석원희, 오금룡 동지들을 비롯한 인천 전기원들은 파업 이전보다 더 큰 조직으로 성장하였고, 상용직 동지들은 주5일 근무도 쟁취했습니다.

아직도 일부 사장들의 비호와 지원을 받는 ‘한국노총 경인 전기원노조’가 있어 인천 전기원들의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고 있지만, 너무도 자랑스러운 투쟁으로 성장한 ‘민주노총 인천 전기원’들은 잘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또한 열사께서도 언제나 지켜봐 주시고 힘을 주시리 라는 것을 믿습니다.

한평생 전기원 노동자로 살면서 산재로 인한 육체의 고통과 노동자를 무시하고 천대하는 사장들에 의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형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돌아와서는 파업을 하고 있던 형이요, 친구요, 동생들인 인천 전기원들을 보시고 그렇게도 좋아 하시며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도 다시 한 번 멋지게 살고 싶다!’고 전기원 동지들의 파업투쟁을 자랑스러워 했던 형!
환하게 참 잘도 웃으시던 형이 보고 싶어집니다.
추석연휴 홀로 천막을 지키실 때, 차례를 지내고 음식 몇 가지 싸가지고 달려온 제게 “왜 이렇게 빨리 왔냐”며 안타까워하시던 마음이 따스한 형이셨습니다.

그래서였습니까? 긴 파업투쟁의 생활고와 승리에 대한 불확신으로 대부분의 동지들이 눈물을 보이며 하나 둘씩 떠나갔습니다. 열사께서는 어느 날인가 그 날도 저와 둘이 천막에서 밤늦게 술 한잔을 하시며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안 되겠다”고 하셨고 저는 손위 형이지만 형의 말에 그저 비판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제가 좀 더 형의 마음을 잘 읽었었다면 하는 후회가 큼니다.

며칠 있으면 형이 그토록 보고파 하실 동지들이 형이 잠들어 계신 묘역으로 갈 것입니다.
저와 인천전기원들이 한평생을 살아가며 용기를 잃지 않도록, 그리고 투쟁의 길을 가며 더 어려운 동지들과 연대도 튼튼히 할 줄 아는 진짜 멋있는 노동자가 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십시요.

술 한 잔 올리러 곧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