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건설노동자의 죽음"

"열사를 떠나보낸 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습니다. 우린 아직 열사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난 2006년 여름. 포스코 점거농성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방패에 맞아 숨진 포항건설노조(현 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 조합원 고 하중근(당시 45세)씨. 고인의 2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린 지난 25일 포항 형산강 둔치에는 추모제 시작 10분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전날은 푹푹 찌는 한여름 날씨였다는데, 고인의 장례식이 있던 날에도, 그와 관련한 집회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비가 그렇게 내렸다고 한다.

간부들은 돌아왔지만 현실은 그대로

"2년 동안 동지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2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2006년 파업 당시 조합원들은 한 명의 동료를 하늘로 떠나보냈다. 노조간부들은 모두 구속됐다. 추모제를 앞둔 지난 17~19일, 파업 당시 포스코 점거농성으로 구속됐던 전 집행부 7명이 만기 출소했다. 이지경 전 노조 위원장만이 아직 감옥에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형산강 둔치 건너편에 있는 포스코 공장 굴뚝에선 쉼없이 연기가 피어올랐다.

"열사의 염원이다. 노동탄압 중단하라."

노동자들이 외치는 함성이 저 포스코까지 들릴까. "열사를 떠나보낸 지 2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책임자는 단 한 명도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포스코의 노조탄압은 2006년과 다를 게 없습니다."

원청인 포스코건설로부터 도급을 받은 전문건설업체들은 10차례 넘는 토목분회의 교섭요구를 회피했다. 이날로 11일째 이순 토목분회장과 김상은 대의원은 단식 중이다. 김 대의원은 결국 이날 아침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다.

누가 그를 죽였나

"썩어빠진 언론을 앞세우고 살인적인 폭력을 앞세우고 국가권력과 자본을 앞세우고 노동자를 살해했다. 누가 노동자를 죽였는가 누가 노동자의 목숨을 끊었는가."

2년 전에도 이 노래를 불렀다는 '좋은 친구들'의 추모공연이 이어졌다. 2년이 흐른 지금도 누가 고인을 죽였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책임을 진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동료들은 "열사의 한을 아직 풀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낮은 북소리와 장구·징·꽹과리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국화꽃을 들고 고인의 넋을 기리던 손영성씨 앞으로 흰 천이 길게 깔렸다. 국화꽃을 하나하나 흩뿌리던 그가 배로 천을 찢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승을 버리고 저승으로 올라가라는 의미라고 했다.

"지난 20년 동안 열심히 싸웠습니다. 때로는 잘나갈 때도 있었고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현 집행부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단결합시다. 노동자가 승리하는 것이 열사의 정신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추모제가 열린 이날 감옥에서 단식에 들어간 이지경 전 노조위원장의 인사말을 남궁현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이 대신 읽었다.

끝나지 않은 죽음

"하중근 동지가 비극적 죽음을 당한 후 2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고인에게 정의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건설산업연맹이 지난 2년 동안 계속해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하중근 동지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중근 동지가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국 정부가 그의 죽음을 둘러싼 당시의 상황을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며 책임자들을 엄중히 처벌하는 것입니다."
암벳 유순 국제건설목공노련 아시아태평양지부 대표도 멀리서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Ⅰ.
당신, 가슴으로만 살아
눈 꼭 감고 동지가를 들었을까
이 뭐냐 이 뭐냐
깨어진 머리로 곰곰 생각하고 있었을까
어머님의 뜨거운 눈물바람
사무쳐 차마 함께 울지 못했을까

몇 날인지 헤아리기 그만둡니다.
폭우 속에서,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뉘엿뉘엿 더디 넘는 여름 저녁 해를 보며
목이 쉬도록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 다 타버린 양초가락
몇 개인지 잊었습니다.


Ⅱ.
당신 이름 석자 뒤에 열사가 따라옵니다.
하중근 열사여, 살아서 한번도 열사가 되리라고는
꿈에서도 그리지 않았을 열사가 되어진 하중근 열사여!
늙은 어머니 얼굴 한번 조바심치지 않고
어루만지며 눈 맞추고 웃어볼 시간
하루 여덟 시간 주 5일 근무 고작 그 가난한 소망하나
그저 남만큼만 살아보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로
하중근 열사여, 바라지도 않던 열사가 되어진 열사여!

살아서, 시퍼렇게 눈뜨고 살아서, 오직 살아서 가고자 한 길
살고 싶다는 발버둥 오히려 무참히 죽여서
이제 당신은 우리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주검을 넘어, 또 우리 죽으러 가야 할 길
살고 싶어서 죽어버린 당신을 이정표삼아
통곡을 넘어, 분노를 넘어 결국은 당신에게로
우리 돌아갈 때
동지여, 하중근 동지여
우리의 피 묻은 손에는 주 5일 근무, 하루 여덟 시간 노동의
보잘 것 없으나, 그대 갖고 싶었던
그 선물 들려있으리다


동지여 그곳에서는 부디 편안 하소서
먼 하늘 동터오던 그대 웃음인양
천지에 가득한 동지의 숨결 더불어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으로 우리 가열 차리니,
이승의 질곡은 우리에게 맡기고
동지여, 하중근 동지여 부디 영면하소서.



이제 더 이상 노동자들이 머리 깎고, 단식하고, 감옥가고,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역시민단체들도 동참하겠다고 했다. '노동과 복지를 위한 포항시민연대'의 송애경 부대표는 고 하중근 조합원을 기억하며 추모시를 읽어 내려갔다.

비가 가늘어진 오후 6시쯤. 추모제에 참석한 동료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는 것으로 추모제는 끝났다. 하지만 고 하중근씨의 죽음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책임자가 처벌되고 건설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보장되는 그날까지….


유가족 손해배상소송 아직 결론 안나

하중근 조합원이 사망한 지 6개월이 지난 2006년 12월. 고인의 유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은 "살인·폭력진압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위진압 과정에서 시민이 사망하는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인의 사망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부상 때문일 개연성이 있다는 결정을 내렸고, 정확한 사망원인과 관련해 검찰총장에게 수사를 의뢰했다. 그 뒤 2008년 7월 현재까지 정확한 사망경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소송대리인인 권영국 변호사는 "촛불집회에서 나타나듯 경찰은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시민들의 생명이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경찰에 무거운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중근 조합원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때문에 사망했다"고 확신했다.

한편 유가족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지난 24일 변론이 종결됐다. 다음달 14일 법원의 선고가 예정돼 있다.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