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공기단축과 최저가낙찰 고리 끊어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15일 ‘산업재해 대책마련’ 토론회

2005년 609명, 2006년 631명, 2007년 630명. 지난 3년 간 건설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건설노동자수다. 공통점은 사망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산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건설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7명의 건설노동자가 중상을 입은 이천 코리아 냉동창고 화재참사가 발생한 후 3개월이 흘렀다. 민주노총은 오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합동 추모제’를 앞두고 4월을 ‘노동자 건강권 강화의 달’로 지정했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15일 건설산업연맹(위원장 남궁현)과 함께 건설현장 산업재해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마련했다.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지난 사고는 ‘화재’ 참사가 아니라 ‘산재’ 참사라고 강조했다.

중소규모 건설현장 재해가 70%

노동부가 2006년 발표한 ‘2005년 산업재해현황분석’에 따르면 건설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의 70.1%가 29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9월 중소규모 건설현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중소규모 건설현장의 건설노동자 10명 가운데 4명은 산재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한기운 한국안전연대 회장은 “120억원 미만 공사현장에서는 재해예방 대행기관이 안전관리를 대행하고 있다”며 “안전 관리자 선임기준을 50억 이상 공사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관리 사각지대에 노동자 방치

심규범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현장에서 산업안전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 다단계 하도급구조 개선을 통해 고용관리를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 고용했는지가 명확해야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시공참여자 제도가 폐지됐지만 발주처•종합건설업체•전문건설업체•팀장으로 이어지는 다단계하도급은 건설현장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산업연구원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팀장이 또 팀장을 고용하는 3단계 이상의 하도급이 전체 불법 하도급의 70%를 차지했다. 이렇게 되면 건설현장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고용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심 연구위원은 “올해부터 노동부가 건설고용보험카드를 보급하고 있다”며 “시공참여자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노동자를 직접 관리해야하는 전문건설업체에게 건설고용보험카드를 보급해서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를 안착시키고 건설노동자에 대한 피보험관리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저가 발주 규제 방안 부재

건설현장의 산업재해 원인에서 빠지지 않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최저가낙찰제다. 최저가로 낙찰받은 원도급사에서 심한 경우 5단계까지 다단계 하도급이 이뤄지면 안전관리 비용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설노동자들이 안전보호장구 지급을 요구해도 돈이 없어 지급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심 연구위원은 “다단계하도급구조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낙찰률이 지나치게 낮아지면 그 부담이 하도급 업체나 팀장들에게 전가된다”며 “실공사비를 낮추기 위해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할 경우 산재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발주처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발주를 내도 이를 규제할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밝힌 100억원 이상 공사로의 최저가 낙찰제 확대방안도 재고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건설현장 산재 은폐 방지책 마련돼야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산재가 은폐되지 않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심 연구위원은 “정상적으로 산재 신고가 이뤄져야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정상적으로 후유증까지 치료할 수 있고 사업주도 공상처리 비용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4주 이하의 요양을 요하는 재해는 사전심사제도(Pre-Qualification) 재해율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PQ란 정부가 발주하는 대형공사에 참여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사전에 심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산업재해 비율이 높을수록 불리해 건설업체들이 산재를 은폐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권한 강화해야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건설노조 인천건설지부 전기분과 관계자는 “최근 명예감독관 교육을 받았는데 50명 가운데 5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건설업체 관계자였다”며 “노동자로 구성된 감독관이 더 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건설현장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의 현장 출입권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지만 노동부에서는 ‘권한남용’이라는 주장만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기업규제 완화 방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대해 허서혁 노동부 안전보건지도과 사무관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연결된 산업안전관련 규제는 완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스기사>
호주의 ‘그린카드(Green Card) 제도

심규범 연구위원은 15일 ‘건설현장 산업재해 대책마련’ 토론회에서 호주의 그린카드제도를 소개했다. 호주의 건설노동자들은 반드시 산업안전교육을 이수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그린카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기초적인 산업안전에 대한 지식이 있는 노동자에게만 현장출입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린카드는 현장출입증 기능도 겸하고 있다. 현장 관리자가 매일 출근할 때 노동자들의 카드를 체크한다. 협력업체의 노동자들도 물론 소지해야 한다. 만일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노동자들을 대피시키고 현장의 인원과 대피한 인원을 체크할 때 이 카드의 입력 상황을 파악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린카드 발급을 위한 교육은 개별 기업에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업 단위의 교육훈련기관에서 실시한다.
올해부터 노동부는 전국의 100억원 이상의 건설현장에 건설고용보험카드를 보급하고 있다. 이동이 잦은 건설노동자들의 특성을 감안해서 이들을 가장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개발한 것이다.
심 연구위원은 “일정규모 이상의 현장에 대해 호주의 그린카드처럼 건설고용보험카드를 소지한 근로자만 현장출입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펌 매일노동뉴스 조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