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려는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는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근 정부의 노동정책이 “유연성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과 노동시장의 현실을 무시한 규제, 통제적 정책”이라는 내용의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경영계는 성명에서 “정부가 파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도급계약을 비정규직 영역에 포함시키려 한다”며, “도급의 문제를 파견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고 시장경제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또 노동계가 참여하는 비정규직 실태조사 위원회, 특수고용노동자 전단팀에 대해서도 “노조의 개별 사업장 개입을 초래하고 산업현장의 분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정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 법안, ‘배우자 출산휴가’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의 내용이 담긴 남녀고용평등 법안에 대해서도 “과도한 고용보호로써 고용경직성만 심화시켜 기업경쟁력 약화의 원인이 된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우선 경영계의 주장처럼 과연 정부가 노동계의 압박에 밀려 요구사항을 신중한 검토와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지, 또 기업과 노동시장이 유연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보수정치권, 경영계는 투자환경 조성과 기업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IMF 구제금융 이후 정리해고제, 파견제 도입을 시작으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집요하게 추진해 왔다. 이로 인해 노동형태 다양화, 비정규직의 확산, 사회양극화 등 급격한 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초래했다.

그간 노동계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비정규직 고용형태 폐지는 물론 차별 해소, 노동자 정의 확대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누더기 법안을 만들더니 오히려 불안정 노동을 제도화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말 보수 양당에 의해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법과 노사관계 로드맵 관련 법은 기간제 사용 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불법파견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한편, 정리해고와 부당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노동3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와 보수정치권이 추진한 노동정책의 핵심은 비정규직 보호와 노사관계 발전이 아니라 노동유연화 그 자체였다.

또한 올해 7월 시행을 앞둔 기간제법, 파견법과 관련해 정부는 최근 시행령 제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용기간 제한 예외 규정을 두고, 파견허용업종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관련해서는 정부가 지난 3월 민주노총과 약속한 입법논의 전담팀 구성 시한인 4월 15일을 훌쩍 넘긴 상태다.

덤프, 레미콘, 굴삭기 등 특수고용 노동자를 비롯해 현장계약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건설현장을 돌아보라. 불법 다단계 하도급, 만성적인 임금체불, 다발적인 안전사고 등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건설노동자들은 4대보험 가입은커녕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못하는 등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경영계 스스로 지적한 데로 “산업현장의 분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안마다 입버릇처럼 “유연성 부족” 운운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할 것이 아니라, 특수고용과 비정규직 남용, 경제 불평등 심화와 극단적인 대립,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2007년 4월 16일

전국건설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