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은... 피의 상징이고 투쟁의 깃발입니다

비가 내립니다.
낡은 옥사가 비에 젖습니다.
복도를 울리는 교도관의 구두 발자국 소리도, 열쇠 소리도 사라졌습니다. 형광등 불빛은 환하지만 밤이 깊어 갑니다.

멀고 험한 길을 돌아왔습니다. 지역과 업종의 벽을 넘어 피로 얼룩진 깃발을 세우기까지 너무 먼길을 돌아왔습니다.
직종의 차이 지역의 차이보다 어쩌면 자기조직의 이해를 더 생각하고 우리가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가야 할 길이 많이 있고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이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산별조직은 지금 조직되어 있는 대중들의 이해와 요구도 중요하지만 미조직 건설노동자의 이해를 받아안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배척할 문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은 언제든지 이주노동자를 이용해서 우리를 갈라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해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고 준비까지 미루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검찰의 무리한 개입과 파업을 파괴하기 위한 공작은 포항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대구에서도 파업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과 노조 압수수색 영장은 5월21일 합법적인 집회에서 스프레이로 낙서한 것을 가지고 엮었습니다.
어쨋든 포항지검의 문제를 가지고 단식투쟁을 하자고 교도소안의 동지들이 의견을 모았고 실행에 들어갑니다.

상고심 선고를 앞두고 경향신문에서 터진 이 사건을 구속되어 있는 노동자들은 단식투쟁으로 대응하여야 하지 않는가 하고 말입니다.
민주노총 차원에서도 대검 항의방문, 대법 앞에서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동지들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겠지만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속된 동지들이 동지들과 함께 투쟁할 수 없는 것을 가슴 아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옥에서도 자기를 이겨내고 단련시킬 수 있는 것은 동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보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정과 자료들을 구속된 동지들에게 보내주십시오.
공유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지들의 손발을 묶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동지들입니다.

[대구교도소 단식투쟁에 돌입하며..] 피의 상징이고 투쟁의 깃발입니다 - 조 선 남 - 열이 있으면 열을 내어 놓고 스물이 있으면 스물을 내어 놓고 단 하나뿐인 그것마저 다 내어 놓고 싸움은 시작됩니다. 꿍쳐두고 남겨두고 슬며시 한 발 뒤로 빠질 잔머리 굴리면 투쟁은 시작되지도 않습니다 생명을 태우며 불길을 일으키듯 생명을 죽이며 생명을 살려내듯 나를 버리고 전체가 하나되는 우리 내부로부터 하나가 되어가는 투쟁입니다 우리가 가진 마지막 투쟁의 무기 목숨을 걸고 단식을 시작합니다 투쟁의 시작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다섯이 되고 열이 되고 천이 되고 만이 됩니다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불길이 남아 있고 아직도 우리의 영혼속에 하중근 열사가 살아 있듯 형산강 다리를 건너던 끝없는 물결은 200만 건설노동자의 뜨거운 피로 흐릅니다 검찰과 경찰,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독재정권의 군홧발로 짓밟아대듯이 파업 파괴공작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고 단순참가자, 연대의 손길마저 공동정범으로 몰아 마녀사냥하듯 무더기로 구속시키면서 감옥은 건설노동자로 넘쳐납니다. 감옥은 마지막 한 명의 동지가 석방될 때까지 투쟁하는 건설노동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볼모가 아니라, 저들의 포로가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깃발이 되고 있습니다 포항 동지들만 아니라 여수 광양 동지들만 아니라 플랜트, 토목 동지만 아니라 덤프, 타워 동지만 아니라 모든 건설노동자의 가슴에 휘날리는 피의 상징이고, 투쟁의 깃발입니다 패배가 두려웠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노동자의 길 패배할 줄 알면서 피할 수 없었던 투쟁 수 많은 패배와 좌절속에 승리를 확신하고 구속되고 죽어가면서 노동해방의 길로 나아갑니다 열이 있으면 열을 내어 놓고 스물이 있으면 스물을 내어 놓고 혼자서 안되면 둘이서, 다섯이 안되면 열이 열이 안되면 천이 되고 만이 되어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끈질긴 투쟁으로 지하에서 하늘과 맞닿은 타워까지 건설노동자 하나되는 투쟁의 시작입니다 피의 상징이고, 투쟁의 깃발입니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하지만 새싹은 움트고 있습니다. 구속된 동지들과 함께하는 첫 시작은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낸 아주 짧은 소식은 구속된 동지들에게는 징역살이를 버텨내는 힘이 될 것입니다. 한 번도 못만나고 제대로 인사 나누지 못한 얼굴일지라도 건설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함께 투쟁하고 있는 구속된 동지들에게 편지를 보냅시다. 움추렸던 몸~ 같이 풀어봅시다. ■ 대구교도소 조기현 동지 우편번호 704-600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서우체국 사서함 7호 49 ■ 대구구치소 강우성 동지 우편번호 706-600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우체국 사서함 48호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