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입니다”
[현장] 포항건설노조 故 하중근 조합원 건설노동자장

박경철 기자

△6일 故 하중근 조합원의 장례식이 열렸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하중근 열사가 부상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형산로터리에서 노제가 열렸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습니다. 장례를 치른다고 해서 절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투쟁의 시작인 것입니다. 열사정신을 가슴에 품고 포항 투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끕시다”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조합원의 장례가 건설 노동자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식이 이뤄진 6일 새벽 동국대 포항병원 영안실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다. 유가족들의 요구로 장례를 치르지만 하중근 조합원의 죽음과 포항건설노조의 파업사태는 여태껏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16일 하씨가 중상을 입던 날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선 추적추적 비가 뿌려지고 있었다.

△하중근 씨가 부상당하던 그날 처럼 장례식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오열하는 유가족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오전 9시경 가족들의 오열 속에 발인이 진행됐다. 하씨의 큰형 하성근씨는 “중근이가 부디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내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을 수 있도록 누구든지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발인을 마친 유가족과 포항건설노조 조합원,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 1천여명은 하씨가 경찰의 살인적 폭력에 중상을 입은 장소로 추정되는 형산강 로터리에서 노제를 지냈다.

△노제를 지내고 있는 포항건설노조 조합원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하 씨는 지난 7월 형산강 로터리에서 경찰의 살인적 폭력에 다발성 외상을 입고 뇌사 상태에 빠진 뒤 8월 1일 새벽 끝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수사를 빌미로 사고 발생 50일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고, 정부도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아 사회적 지탄을 받아왔다.

하지만 결국 사태해결을 매듭짓지 못한 채 장례를 치르게 됐다.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장례를 치러야 하는 노동자들은 패배감에 젖을 법도 했지만 이들은 새로운 투쟁을 결의하며 꿋꿋하게 노제를 진행했고, 형산강 로터리에서 포스코까지 장례행진을 한 후 영결식을 진행했다.

△하중근씨가 그토록 오고 싶었던 포스코 앞.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잘가시오 열사여. 상복을 입은 노동자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은 영결식에서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열사를 보내야 하니 면목이 없다”며 울먹였고, “반드시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의 힘으로 하중근 열사의 한을 풀겠다”고 밝혔다.

민중가수 지민수씨와 노래패 좋은친구들, 결의 추모공연이 애도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열사정신 계승, 하중근 열사 건설노동자장’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헌화와 분향을 끝으로 장례행사를 마쳤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철의 노동자" 하중근을 기억하라
하중근 열사 서울에서도 장례식...청와대까지 애도 십보일배

윤보중 기자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는 일들이 많다. 그리고 그 중에 어떤 일들은 꼭 알려져야만 한다.

70년대 '노동3권'을 이야기하며 온 몸을 불길 속에 내던졌던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땅의 어둠을 깨쳐나갔듯, 2006년 어느 건설노동자의 죽음은 노동자의 마음 속에 한 획을 그었다.

6일 서울 대학로에서 진행된 고 하중근 열사의 장례식과 십보일배는 한 달여 남짓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해왔던 노동자들의 눈물과 회한을 되돌아보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건설산업연맹 이용식 지도위원은 "눈물을 닦고 한숨을 멈추자"며 "한 많은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대신해 줄 사람은 우리 자신 뿐이므로 우리들이 끝까지 단결된 투쟁으로 기어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외쳤다.

이용식 지도위원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말하기도 지칠 정도"라면서 "장례를 통해 우리가 깨달은 것은 정부와 자본은 결코 노동자의 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참으로 고통스럽게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이 날 포항에서 상경한 60여명의 조합원들은 하중근 열사의 영정에 국화를 바치면서 울분을 참지 못했다.

△ 뇌사상태에 있던 하중근 열사를 꼭 만나야한다며 중환자실 앞에서 울분을 토하던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내가 갔어야 했는데, 내가 갔어야 했는데"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

포항건설노조 상경투쟁단과 시민단체회원 등 100여명은 대학로에서부터 십보일배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방송을 통해 하중근 열사의 "억울한 죽음"을 알려냈고, 상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모습에 시민들도 다소 생소한 듯 관심있게 지켜봤다.

자신도 건설노동자라고 밝힌 김모(59, 남)씨는 "아내와 나들이를 나왔다가 우연히 보게됐다"면서 "부검결과도 경찰의 폭행사실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 같은데 그것을 덮어두려고만 하니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온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 했다.

시민들은 이들이 나눠주는 유인물을 받고 차량에서 나오는 방송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과 "안타깝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하중근 열사는 포항 토박이로 포항시 구룡포읍 대보면에서 1962년에 모친 김우하 여사의 6남매 중 막내로 출생했다.

하중근 열사는 지난 7월 16일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던 포항건설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평화적인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방패와 소화기로 추정되는 물체에 맞아 뇌사상태에 빠졌다.

이후 하중근 열사는 포항시에 있는 동국대병원에서 보름간 사경을 헤매다 끝내 89세의 노모를 두고 8월 1일 사망에 이르렀고 현재까지도 경찰은 하중근 열사의 죽음을 두고 "길에서 넘어져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도 이와 관련 자체적으로 진상 조사를 실시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거나 의제로 다루지 않고 있다.

이 날 공개된 하중근 열사의 짤막한 약력에는 포항수고를 졸업한 것 외에는 그의 한생을 차지한 건설노동자의 삶은 빠져있었지만, 그가 남기고 간 "단결 투쟁의 절실함"은 건설노동자들의 가슴 깊이 새겨졌다.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