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

건설노동자 철판 압사…노동부 '모르쇠' - <노동과세계>

집진기 박스 제작과정에서 하나뿐이던 지지대 빠지면서 6백kg 철판 넘어지며 사고 발생, 불법하도급업체 자연건설 사장 위증 의혹 사고은폐하려는 듯

건설노동자가 작업 중 철판에 깔려 사망했다.

플랜트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8시40분 경 전라남도 광양시 옥곡면 신금리에 소재한 지앤텍 협력업체(자연개발) 소속으로 일하던 정OO 조합원(44세)이 철판에 깔려 숨졌다.

정OO 조합원은 집진기(먼지를 걸러주는 기계) 박스 제작과정에서 용접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옆쪽에 세워뒀던 가로 5m, 높이 3.3m, 무게가 6백kg에 달하는 철판이 넘어지면서 밑쪽에 깔렸다.

무거운 철판을 세워놓을 경우 넘어지지 않도록 실링밴드와 레버블럭을 이용해서 앞뒤로 지지대를 설치하고 고정시켜야 하는데 당시 사고현장에서는 뒤쪽에만 지지대를 대 놓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조합원은 엄청난 무게와 부피의 철판에 깔리면서 폐가 찢어지고 갈비뼈가 심하게 골절돼 장기손상과 복강 내 출혈이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기 내 동맥이 크게 손상돼 수혈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출혈이 심했다. 사고 직후 순천 성가롤로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 측에서 수술이 힘들다고 해서 오전 11시47분 전남대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결국 사망했다.

정 조합원 옆에서 작업하던 김OO 씨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허리가 골절되는 등 중상을 입고 현재 입원 치료 중이다. 사고현장 바로 옆에서 함께 작업했던 김OO 씨가 생존했으나 사고 당시 정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모호한 상황이다. 생존한 김OO 씨가 말하는 내용이 석연치 않은데다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망한 정 조합원 소속 도급회사인 자연건설 사장은 “내가 ‘쿵’ 하는 소리를 듣고 현장으로 달려왔을 때 정OO 씨는 의식이 있었다. 내가 소리를 질러서 구조신청을 했다. 또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정OO 씨가 철판 지지대를 발로 차서 넘어갔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는 자연건설 사장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사고 당시 자연건설 사장이 있었다는 컨테이너는 현장에서 20m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정 조합원과 불과 5m 떨어진 곳에서 작업을 하던 다른 동료들도 소리를 듣지 못해 사고소식을 알지 못했던 상황에서 어떻게 도급사장이 그 소리를 듣고 올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또 정 조합원이 철판 지지대를 찼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노동조합 반론이다. 왜 차며, 또 성인남자가 발로 찬다고 해서 제거될 무게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부상을 입은 김OO 씨와 자연건설 도급사장은 처남 매형 지간이라는 것이 밝혀져 이 두 사람 증언은 일단 위증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노조 판단이다. 노동조합이 알아봤더니 ‘자연건설’은 전문건설업체로 등록돼 있지도 않았다. 자격 없는 사람이 사업자등록증만 내서 면허 없이 사람을 고용해 돈을 벌고 있었던 셈이다. 건설현장에서 자격 없는 사람들이 불법하도급을 통해 노동착취를 해 온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한다.

결국 철판이 왜 넘어졌는지 그 원인조차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은 제3자가 호이스트 크레인을 잘못 조절하는 등 외부 힘에 의해 철판이 넘어졌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어쨌든 원청인 지앤텍 집진기 설치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인 만큼 지앤텍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노조 입장이다.

원청인 지앤텍은 “사고처리 과정에서 최대한 돕겠다”고 밝혔지만 노동조합은 “도움이 아닌 책임을 원한다”며 책임소재가 지앤텍에 있음을 분명히 통보했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에 대한 부분을 사업주가 명확히 이행했느냐 여부 말고는 자기네가 상관할 바 아니라고 밝혀 유족과 동료들 분노를 사고 있다.

노동조합은 3일 유족으로부터 장례를 포함한 이후 모든 처리절차를 위임받고 진상규명과 원청이 책임질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플랜트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 선진래 노동안전부장은 “험한 건설현장에서 작업하다 이렇게 사망하는 경우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하고 “노동자들 안전을 전혀 고려치 않는 불법이 판을 치는 건설현장에서는 날마다 수많은 사고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번 정 조합원 사망사고는 진상을 반드시 규명해 건설노동현장이 얼마나 무법천지인지를 폭로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미리기자/노동과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