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합원들도 40-50년동안 살아 오면서 세금 내면서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했는데 이런 대접밖에 받지 못하니 너무 서글프다. 우리 건설노동자들을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플랜트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가자 곧바로 수배상태가 되어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상황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박해욱 위원장을 만났다.
경주에서 태어나 스무살 이후부터 울산에서 용접일을 하며 살아온지 벌써 수십년째.
작년 플랜트 노동조합이 결성된 후 초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된 노동조합 활동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천여명의 울산 건설 노동자들 파업을 50여일째 이끌고 있는 박해욱 위원장은 작은 체구였지만, 그 눈빛에서 강직한 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

▲가족

85년도쯤에(기억이 잘 안난다며 희미하게 웃는다) 결혼해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인 아이들이 있다. “아빠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잘 이끌어서 빨리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고맙다고 한다. 특히 작년부터 노동조합 활동 한다고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있는데 불평하지 않고 이해하며, 아이들에게까지 이해를 시켜주는 애들 엄마에게 무척 고맙다고 한다. 수배중인 상황이라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빠를 보기 위해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번정도씩 이곳에 찾아와서 만나지만 올해 86세된 노모가 걱정이라고 한다.
경찰들이 집에까지 찾아가서 늙으신 노모에게 쓸데없는 얘기를 해 걱정을 시킨다며 우려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된 계기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가며 사는게 전부였는데 우연히 여수의 노동조합 활동들을 알게 됐다.
2003년도에 거제도 삼성중공업에서 하는 공사에 일한적이 있었는데 함께 파트너로 일하던 용접사가 여수 노동조합 사례를 많이 얘기해 줬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울산의 어려운 조건을 노동조합으로 풀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수 노동조합의 출범과정과 투쟁과정등을 들으면서 우리도 뭉치면 근로기준법대로 주,월차도 8시간 노동제도 찾을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다.

▲사람잡는 다단계 하청 “모작”을 없애야 한다

건설 노동자들의 일은 다단계 하청으로 인해 아무리 큰 공사라 해도 장기간 일을 할 수 있는 업체가 없어 일이 끊겨 일년에 8개월도 일을 못한다.
예를 들어 SK라는 회사가 공장을 새로 짓기 위해 SK건설에 발주하면, 이 회사가 원청회사가 된다. 다시 SK건설이 A라는 회사에 하청을 주면 건설산업기본법상 더 이상 하도급을 주지 못하게 되어 있다. A라는 회사에서 시공을 다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건설현장은 수십년간 관행적으로(일제시대부터) 반장들에게 모작형태로 하청을 준다
외형상으로는 A라는 회사가 공사를 다 하게 되어 있는데 반장한테 모작을 주고 반장이 우리같은 일꾼들에게 또 쪼개서 준다.
일당제로 날일을 하고 싶어도 모작을 하지 않으면 일거리를 주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원천적으로 모작을 하게끔 구조를 만들어 놓는다.
큰 공사를 할때 A,B,C 등 몇 개 업체가 참여하는데 각 업체가 이런 구조로 모작을 떼어주게 된다. 외형상으로 A라는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반장들에게 모작을 떼어주면서 일을 시키는 것이다. 모작은 노동강도가 높아 장시간 일을 할수록 사람을 골병들게 한다. 그러나 사람이 골병드는 건 안중에도 없이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울산의 거의 모든 건설 현장에서는 모작을 선호한다. 원청회사는 이런 걸 알면서도 묵인한다.
노동조합이 활발한 여수,광양등은 모작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 일자리를 많이 나눌수 있다. 과거처럼 다단계 하청(모작관행)이 없어지니까 노동강도가 낮아져 일자리를 나누어 갖게 되는 것이다. 회사측은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으로 한사람이 모작으로 인해 착취해가는 임금을 분배할수 있는 구조가 생기는 거다.

▲교섭에 대해

현재 노동부에서 발표한걸 보면 종업원으로 인정받은 조합원은 20-30명선이다. 그럼 나머지 1000여명은 다 놀던 사람인가? 우리 조합원들은 70-80%가 울산에서 일하던 사람들인데 노동부의 억지주장은 우리 노동조합을 말살하려는 자본과 노동부의 합작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번에 노동부에서 교섭업체로 지도한 12개 업체는 거의 SK에 상주하는 업체다. 현재 교섭을 전문건설업체에 요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는 발주회사가 한다. 전문건설업체는 교섭에 나와도 발주회사의 눈치를 보고, 일정정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우리 조합원들이 일을 하러 현장에 출입하는 문제도 발주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채용에서부터 발주회사의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이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에 보면 산재가 일어날 경우 발주회사가 책임을 지게 되어있다.
이런 모든 상활들을 봤을때 실질적으로 우리 조합원들을 고용하는 건 발주회사라고 얘기할수 있다. 발주회사들은 전문건설업체들을 앞세워 파업을 계속 방관만 하지 말고 교섭에 나와야 할 것이다. 교섭에 직접 나와서 무엇이 문제인지 들어보고 해결점을 함께 찾아야 한다. 굳이 교섭이라는 이름을 붙일수 없으면 대화할수 있는 자리라도 만들어야 한다.
여수, 광양, 포항등은 단협에 참여한 업체가 200개업체가 넘는다. 울산은 노동조합에서 단체협상을 요구한 업체가 72개 업체다. 여수같은 경우 초기에 단협에 참여한 업체가 50여개였는데 나중에 늘어나게 된것이다

▲노무공급권은 우리의 주장이 아니다.

노무공급권을 노동조합에서 주장한다고 회사측에서 언론을 통해 꾸준히 흘린다.
회사에서 얘기하는 노무공급권은 우리가 달라고 해서 주지도 않을거고, 또 우리가 그런 권한을 가져 사람을 제공하는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다
노동조합은 그런 것을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 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우리는 그런걸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업체측에서 미리 “앞으로 그렇게 될것이다”라는 가정하에 교섭을 회피하는건 우스운 일이다. 교섭에 나와서 입장을 얘기하면 될것인데 요구하지도 않은걸 가정해서 교섭에 나오지도 않는건 억지주장이다.


▲파업이 승리해야 우리가 살수 있다.

일년에 평균 200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생활하던 조합원들이 그나마 파업으로 인해 그돈도 벌지 못하고 있어 다들 무척 생계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파업에서 지게 되면 울산 최대 일터인 SK에 일하러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는 그야말로 생존권을 걸고 싸운다. 이 싸움이 지면 천여명의 조합원들이 먹고 살기 위해 울산땅을 떠나야 한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SK라는 일터에서 일을 못하게 되는데 어떻게 살수가 있겠나... 파업에 들어가고 나서 조합원 명단을 전 업체에서 공유하고 있다. 누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에게 일을 시킬려고 그러겠나...그래서 우리는 목숨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해지니까 다들 극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제2의, 제3의 이문희(SK 베셀타워 농성중)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아무도 할수 없다.

▲갈수록 강철대오가 되어가는 조합원들에게

내일이면 파업에 들어간지 50일째 되는 날이다
천명대오가 흐트러짐 없이 버텨온건 집행간부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너무 억압받고 착취당한 한스런 과거가 있어 이렇게 모일수 있고 버틸수 있었던 거다. 또 노동조합에 대한 애착심이 그만큼 크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파업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야 하고 우리 조합원들이 파업 승리할 때까지 단결해서 동참해주기를 바란다.

▲점거농성중인 조합원들은
(오늘 비가 120미리까지 예보되어 있다면서 점거농성중인 조합원들을 얘기하는 박해욱 위원장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처음 올라갈 때 침낭도 가져가지 않고 방한복 한 개씩만 가지고 갔다. 비소식을 듣고 비닐을 준비해서 올려줄려 했는데 SK에서 안된다고 한다.
그 추운 바닷바람 속에 방한복 하나만 입고 밤새 떨고나면 근육이 마비되고 거기에 비까지 오면 기온이 떨어지는데 어찌 견딜지...
경찰도, SK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음식물과 추위를 이길수 있는 비닐, 침낭은 올려줄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점거농성중인 조합원들은 단단한 각오를 가지고 올라갔기에 강제진압을 하게 되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구속은 당연히 각오했다

(2004년 1월 6일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박해욱 위원장은 초대위원장직을 맡았다. 작년 위원장이 되면서 바로 현장싸움으로 구속되어 실형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35일만에 풀려 났다. 그런데 일년도 되지 않아 또다시 구속을 각오했다고 한다.
박해욱 위원장은 어차피 구속은 피할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왕 시작한 노동조합 일이 정상적으로 잘 굴러가기를 바랄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한다.)

▲일을 하지 않을때는 다시 일을 찾으러 다닌다

이런 일(노가다) 하는 사람은 취미생활을 할 여유가 없고, 형편도 되지 않는다.
보통 일하지 않고 노는 날은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만나러 다닌다. 일이 없는 날은 직장인들처럼 휴가가 아니고 실직 상태라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러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이럴때가 오히려 일을 할때보다 마음이 더 불안하고 힘들다, 차라리 일을 할때가 즐겁다. 아예 취미생활은 꿈도 꾸지 못한다.

▲파업 50일이 되는 지금이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지금 조합원들은 휴일이라도 강제진압을 할까봐 농성장과 근처에 모여있다.
처음에 파업을 시작하면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파업에 참여하게끔 설득해 참여율이 높아지면, 어렵지 않을거라 판단했다.
그런데 경찰이 너무 회사를 보호하며 노동자들을 압박해 아예 현장앞에 가지를 못하고 있다. 파업초기에 공장앞으로 가서 파업참가를 설득하는 과정중 경찰과 마찰로 인해 구속자와 부상자가 계속 발생해 정상적인 쟁의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길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건설현장의 노가다꾼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건설 기능 인력이라 생각하며, 그래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는데 이렇게 심하게 탄압하는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
우리 조합원들도 40-50년동안 살아 오면서 세금 내면서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했는데 이런 대접밖에 받지 못하니 너무 서글프다. 우리 건설노동자들을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찰이 계속 탄압 일변도로 나온다면 우리는 살기 위해 그 젊은 경찰들하고 피를 흘리면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5월 6일, 플랜트 노동조합 파업이 50일째 되는 날이다.
아직도 이 나라에서는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각오해야 하는것이 “수배와 구속”이다. “근로기준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건설현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게 그렇게 죽을 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도 국가에서 내라는 세금 다 내는데 파업한다고 이렇게 잔인하게 대해도 되는것인지 묻고싶다”며 분노하는 박해욱 위원장의 항변에 누가 어떤말로 대답할 수 있겠는가?


울산노동뉴스 정기애 기자



2005-05-06 오전 1: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