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불법비자금 "단골"

보도일자 : 2004/01/14
출 처 : 경향신문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속도를 높이면서 건설사들에 의혹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롯데건설, 한화건설, 대우건설을 비롯해 그 하도급회사까지 줄줄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다른 대형 건설사들은 비자금 수사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채권단의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도 수백억원씩의 비자금을 조성한 우방, 동아건설처럼 비자금과 건설사는 항상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수많은 기업에서도 건설업체가 유독 비자금 사건에 많이 연루되는 것은 업종이 지닌 한계 때문이라는 게 일반의 평가다.

건설업은 원가 파악이 쉽지 않고 회계 처리의 투명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전국에 걸쳐 수십~수백개의 현장이 있는 데다 현장마다 수십개의 하도급 업체가 있다. 그러다보니 자재나 장비 및 인력의 조달 원가가 다르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

건설사들이 가장 흔히 비자금 조성방법으로 사용하는 게 하도급 업체와의 이중계약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려 있어 잘 노출되지 않는 데다 현장을 중심으로 수십개 하도급 업체를 상대로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한 서류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건설사가 하도급업체와 80억원에 공사계약했다고 치자. 그러나 서류는 1백억원에 공사계약을 한 것처럼 꾸민다. 회계장부나 세무처리, 통장 입금 등 모든 과정은 1백억원에 맞게 정상적으로 처리한다. 통장에도 1백억원이 공사대금으로 입금된다. 그렇지만 하도급업체는 나머지 20억원을 인출해 세탁한 뒤 원도급업체에 되돌려주는 식이다.

인건비나 장비대여료, 자재구입비를 부풀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건비를 부풀리기 위해 무직자들의 리스트를 확보해 관리하는 것은 알려질대로 알려진 이야기다.

현장 규모에 따라 수백만~수천만원씩 비자금이 만들어진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예전보다 회계가 투명해지면서 비자금 조성도 더욱더 치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실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워낙 광범위하고 관행화돼 있어 특정 기업과 현장에만 메스를 대는 것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 하도급업체들도 이중계약서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3만7천여개나 되는 하도급업체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전국 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전국 46개 현장소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3%가 발주처나 공공기관으로부터 금품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결국 비자금은 정부를 비롯한 발주처와 건설업체를 유착시키는 풀로서도 작용한다.

건설계약연구원 이은재 대표는 “일용직에 대한 고용보험 혜택 확산, 비용처리 전산화 등 일부 개선책은 내놓을 수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잘못된 구조와 문화 때문에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경은기자 ki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