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검 · 경의 건설노조 탄압, 자본 편향적인 인식에서 비롯

2003년, 한 해 건설노조 탄압으로 인해 포항 2명, 대전 6명, 천안 2명 등 올해에만 이미 10명의 동지가 구속되었고, 11명의 동지가 수배 상태에 놓여 있다.
구속된 동지들은 차디찬 감옥에서, 수배된 경기서부 동지들은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가 넘는 살을 에이는 강 추위 속에서 바람을 막아줄 천막조차 치지 못하고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온몸으로 공안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다.
도대체 공안당국이 말하는 이들의 죄는 무엇인가?

검.경은 건설현장의 90%를 차지하고 건설노조 조합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하청의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는 하청과 교섭하지 않고 교섭에 응할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없는 원청과 교섭을 해서 협약을 체결한 것이 죄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 자율로 진행된 수차례의 교섭을 통해 체결된 단체협약은 모두 불법이고, 불법적인 단체협약에 의해 수령한 전임비는 금품갈취라고 한다.
더군다나 결과가 불법이기 때문에 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건설회사에 전화를 하고, 방문을 하고, 고발을 하고, 집회를 하고, 농성을 하고.. 등등의 모든 행위가 건설사 관리자가 압박을 느꼈다면 모두 불법 행위고 형사적으로 협박에 해당된다고 한다.
따라서 건설노조가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원청과 협약을 체결하고, 협약에 보장된 전임비를 받은 것은 다시 말해 협박으로 인해 불법적인 협약을 체결하고, 불법적인 협약에 의한 전임비 수령은 부당한 이득의 취득이므로 형사상 공갈죄가 성립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건설자본은 피해 당사자이고, 건설현장을 바꾸고자 활동한 건설현장의 조직가들은 전부 피의자이다.

자.. 그렇다면 따져 보기로 하자.
건설현장은 평균 5단계, 심하게는 7단계의 중증화된 불법 하도급 구조 속에서 건물이 올라간다.
한 현장에 300명의 현장 노동자가 있으면 10명 정도만이 원청에 직접 고용되어 있고, 290명 정도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안에 녹아 있다.
그런데 수백·수천억원의 공사금액을 만지고 기성 관리, 안전관리, 환경관리, 산재보험·고용보험·퇴직공제 관리, 현장 작업환경 관리, 공정관리.. 등등을 누가 하는가?
불과 10여명의 현장 직영 노동자만을 거느리고 있는 원청사가 모조리 한다.
하다못해 화장실이 더럽거나 부족해서 청소를 하고 추가 설치를 해 달라고 요구하려고 해도 원청에 해야 하고, 현장에 출입을 하는 것도 원청의 통제를 받는다.

모든 법적인, 실질적인 책임과 권한을 원청이 모두 가지고 있는데, 현장에 불과 몇 개월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이 도급 받은 부분만 끝나면 그냥 다른 현장으로 옮겨가는 하청과 무슨 교섭을 하고 무엇을 보장 받을 수 있는가?
건설현장에서 약간이라도 일해 본 사람은 알 거다.
현장에서 원청과 하청의 힘의 관계를.
하청은 현장 출입 하나 보장할 수 없다.
검·경은 이런 건설현장의 다단계하도급 구조를 무시하고 원청과의 교섭이 불법이라고 한다.
그럼 건설노조가 하청 노동자들만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조직인가?
결코 아니다.
지역 건설노조는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회사 관리직을 제외한, 현장의 모든 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한다.
물론 원청 직영, 하청 직영을 모두 포함해서이다.
수사 과정에서 건설노조는 분명히 원청에 조합원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공소장이나 경찰의 조서 어디에도 원청에 조합원이 있다는 기록은 없다.
그들은 무조건 건설노조 조직가들이 하는 이야기는 깡그리 묵살하고 건설자본이 청탁한 대로, 그들이 작성한 각본에 의해 노동사건과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강력계 형사, 폭력계 형사들을 몇 차례 자본의 논리대로 교육해서 수사를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다.

건설현장이 어떤 곳인지 아는가?
하루에 2-3명씩 죽어 나가고, 일년이면 180만 노동자 중 20-30만명이 산업재해에 시달리는 곳이다.
산재 당해도 90% 이상이 은폐 되는 곳이 건설현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에서 안전시설을 설치하라고 요구하고, 시정이 안 돼서 관련법인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고발을 하는 것이 어떻게 협박인가?

올 상반기에 노동부가 발표한 건설현장 체불액이 134억원이다.
같은 기간에 건설노조가 접수받아 해결한 체불액이 무려 160억원이다.
노조가 처리한 체불액은 대부분 노동부가 접수조차 받지 않은 체불액이다.
노동부 가 봤자 당신들 사용자는 십장이나 반장이니까 - 오야지 - 도망간 그 사람들 잡아서 해결하라고 해서 원청사 ·하청사·발주처·경찰서·노동부 모조리 외면해서 막다른 길에 혹시나 해서 찾아왔던 노동조합에서 해결한 체불액이 160억이란 말이다.

정부에서 나서서 주 5일제 이야기하는 판에 건설노동자는 아직도 하루 10시간씩 주당 70시간을 일하며 산다.
건설노동자에게는 일요일도 없고, 공휴일도 없다.
노동조합이 일요휴무 투쟁할 때 검·경은, 정부는, 건설자본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건설노동자의 설움을 그 누가 아는가?
고용보험이 있어도, 산재보험이 있어도, 퇴직공제가 있어도 어느 것 하나 적용 받을 수 없는 설움을 당신들은 아는가?
동절기만 되면 동절기 실업자, 장마철만 되면 장마철 실업자.
그런데 왜 유독 건설노동자는 실업급여조차 받을 수 없는가?
해고가 되도 내가 부당하게 해고 됐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 건설노동자다.

이런 현실을, 이런 현장을 바꿔보겠다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건설현장을 누비고 다닌 사람들더러 검찰은 ‘공갈범’이라고 한다.
너희가 말하는 그 ‘공갈범’들이, 그 힘든 IMF 시기에 월급 한 푼 안 받으며 새벽부터 순두부 팔아서 노동조합 일 하며 10년, 15년씩들 버틴 사람들이다.
오로지 건설현장이 노동조합에 의해 미약하나마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에 즐거워하며 온갖 고통 감내했던 소박한 사람들이다.

노동조합이 현장에 가서 많은 요구를 한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 힘이 미약해서,
법으로 보장된 거라도 제발 지키며 공사하라고, 죽지 않고 돈 안 떼이고 일할 수 있게 만들자고 했을 뿐이다.
그것도 건설자본한텐 과분한 요구인가?
수십, 수백억의 비자금을 만들어 더러운 정치자금을 대 주고, 대관사업비엔 몇 천만원씩 써 대도 그것만큼은 차마 할 수 없나?

서글프다.
아무리 현장에서 사람이 죽어도, 임금을 수개월씩 체불시켜 한 가정이 파탄 나도 단 한 명의 사업주도 처벌하지 않던 검·경이...
건설노동자도 인간이니까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며 노동조합 활동 시작했다고 노동조합 간부들을 모조리 구속시키고 노동조합을 파괴하려고 한다.
이것이 무슨 엄정한 법 집행이란 말이냐...

그래도 너희들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건설현장의 모습이 계속 이 모양 이 꼴이면...

건설노동자도 현장을 바꾸고 노동조합으로 뭉치겠다는 염원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탄압해도 꿋꿋이 버티고 더욱 질긴 억새풀로 성장할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