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

비정규직악법 10년
- 사회보장정보원 해고노동자들의 투쟁과 함께

허 영구(노동당 대변인, 민주노총 전 수석부위원장)

1. 들어가는 말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를 정규직화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당선됐다. 야당후보였던 문재인도 비정규직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왜 절반이고 어떻게 구분하겠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 해 12월 28일사회보장정보원(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당시 명칭)은 고객지원센터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상담노동자 43명을 계약만료라는 미명 하에 집단 해고됐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4조 2항은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이 법조항을 악용해 2년이 되기 전에 불법적으로 해고했다. 결국 ‘무기계약직노동자’가 아닌 단기계약노동자로 만들기 위한 꼼수였다. ‘중규직’이라 불리는 ‘무기계약직’도 차별이긴 마찬가지다.

사측은 계약해지를 통보한 노동자들에게 3개월 초단기 계약직노동자로 신규 입사하라고 강요했다. 며칠만 지나면 2년이 넘어 정규직노동자로 일할 수 있어야 했음에도 한 순간에 해고노동자로 길거리에 내몰린 셈이다. 급박한 생계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노동자도 있었지만 해고노동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를 정규직화 하겠다는 박근혜의 공약은 그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부도수표였다. 이 뿐만 아니라 박근혜의 모든 공약이 헛것이었다. 결국 4년 만에 박근혜게이트로 탄핵당했고 정권 자체가 몰락해 버렸다. 박근혜의 국정문란과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해고노동자들은 거리에서 원직복직을 외치며 장기투쟁을 벌여야 했다.

2.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정책과 비정규직 악법

1998년부터 김대중 정권은 IMF 프로그램 강행했다. 신자유주의 4대 부문 구조조정 정책 중 노동시장유연화 정책이 전면적으로 실시됐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통해 노동자 정리해고가 일상화되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광범위 하게 확산됐다. 고용불안과 함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도 확산됐다. ‘차별(격차)사회’가 되었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노사관계로드맵’을 통해 노동시장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고 공언했다. 출범 2년 만에 정규직이 65만명 줄었고 비정규직은 160만명 늘어났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죽음도 늘어났다. 2004년 노동부로 하여금 ‘비정규직 보호’에 초점을 맞춘 비정규직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 설문조사 결과 비정규직노동자의 70~80%가 찬성한다고 주장했다. 그해 11월 23일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노사관계 현실과 노동정책방향’이라는 주제의 간담회에서 노동부차관은 정부입법안은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10~20% 임금격차가 시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부입법안은 ‘합리적 차별’은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누가 어떻게 ‘합리적’인 차별의 기준을 정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법안 자체가 차별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2000년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3.7%였고, 2004년 당시에는 51%로 더 떨어졌다.

2005년 2월 23일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결의대회에서 비정규직연대회의 의장은 투쟁사에서 “정부와 여당이 비정규직노동자 보호입법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는 독이 든 보약”이라고 말했다.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과 야당인 한나라당은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법 통과를 시도했고 민주노동당은 단상점거를 통해 이를 저지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정규직법안이 비정규직보호에 미흡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자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잘 모르면 용감하다. 비전문가들의 월권행위다. 단세포적인 기준이다. 노동시장 선진화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돌부리다. 돌부리는 파내야 하겠지만 바쁘니까 그냥 가겠다.”며 비난했다. 그는 박근혜정권에서 노사정위원장을 하면서 임금피크제∙성과연봉퇴출제를 밀어붙였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보호가 아니라 ‘합리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차별을 인정하는 법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드러났듯이 비정규직노동자 해고법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규정한 세계인권선언(23조)이나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7조)에도 위배된다.

양 노총은 비정규악법을 막기 위해 공조하는 듯 했다. 민주노총은 2005년 12월 1일 총파업을 예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11월 30일 한국노총이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시하고 국회통과를 주장했다. <양극화해소시민연대>보다 낮은 수준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포기, 기간제노동자의 사유제한과 고용의제포기, 불법파견고용의제포기, 사용사업주 책임포기, 특구고용 노동3권 포기’ 등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본언론은 회기 내 조속통과를 압박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계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다가 한국노총 수정안이 나오자마자 민주노총을 비난하며 ‘비정규직보호입법’이라고 지지를 보냈다. 2006년 2월 25일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이자 금속연맹 위원장을 전격 체포했다. 그리고 2월 27일, 국회환경노동위원회는 4월 임시국회에서 다루겠다는 야4당 합의를 무시하고 경호권을 발동하고 민주노동당의원단과 보좌관을 끌어내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날치기로 비정규직악법을 통과시켰다. 자본언론은 대서특필 일제히 환영을 나타냈다.

예상한 대로 기간제 사유제한 폐지, 불법파견 ‘고용의제’가 ‘고용의무’로 변질, 파견대상과 관련해 정부여당 요구로 ‘업종과 인력수급 사항과 관련해 대통령 시행령으로 정한다’고 결정했다. 2006년 4월 본회의는 넘어갔지만 12월 정기국회에서 비정규직보호법안이 통과됐다.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 안으로 들어가 날치기 통과를 막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국회 앞에서 수천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차 일부가 불타는 등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일부가 연행∙구속되고 대오는 흩어졌다. 국회 안에서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며 방망이가 두들겨졌다.

3. 비정규직 악법 10년

2007년 말 당시 국내총생산(GDP)은 약 1000조원이었다. 이 중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은 약 130조원으로 GDP의 13%였다. 당시 최저임금선상(2007년 시급 3700원)에 있는 노동자가 200만명에 달했는데 이들 임금은 전체의 2%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악법이 통과된 다음 해인 2007년, 비정규직노동자수는 전체 임금 노동자 1500만 중 56%인 850만명이었다. 비정규직노동자 임금은 월평균 노동자 임금 250만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정권과 자본은 불합리한 차별은 20조원 정도이고 많아야 40조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려면 자본으로부터 100조원이 노동으로 이전되어야 했다. 소위 노동소득분배율의 조정을 위한 급격한 분배투쟁이 필요했다.

정식 법 명칭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로 ‘기간제’, ‘단시간’노동자를 보호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차별은 고착화되고 비정규직은 확산되고 있다. 임금노동자는 공식적으로 2000만명에 육박했다. 알바노동자와 잠재적 실업자를 포함한 노동자수는 최대 2500만 명에 달한다. 비정규직노동자수는 최소 1000만명에서 최대 1500만명으로 추산된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노동자가 늘어난 것도 당연한 일이다.

2013년 11월 초, 당시 보건복지정보개발원 투쟁 300일차 당시 한국노동연구원 출신 방하남이 노동부장관이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문형표는 보건복지부장관이 됐다. 방하남은 다시 노동연구원으로 돌아갔고, 문형표는 메르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이사장이 됐다. 그들 모두 노동자나 국민복지의 편이 아니었다. 낙하산 원희목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학교수 임병인이 사회보장정보원장이 됐지만 오직 박근혜와 그 일당들에 충성하면서 자신들의 안위를 누렸을 뿐 봉혜영, 봉혜경 두 여성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절규는 철저히 외면했다.

1000일이 지나고 다시 1500일을 넘어서는 5년차 투쟁을 맞이한다. 박근혜퇴진을 향한 촛불이 1000만이 다다랐다. 그러나 해고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고 비정규직악법을 철폐하는 길은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을 통해서다. 사회보장정보원 동지들의 투쟁을 지지한다!

(사회보장정보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투쟁 5년차 돌입 국회 토론회, 2016.12.28.수.14시,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