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 폐지, 특목고 정책전환 촉구

청와대 앞 농성을 시작하며

국민들께 드리는 호소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내일이 대학입시 수학능력시험일입니다. 어김없이 날씨가 추워진다니 걱정이 됩니다. 밝고 건강하게 배움의 기쁨으로 넘쳐나야 할 청소년기를 학원 심야학습, 보충 자율학습으로 보내야 하는 지금의 교육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 총장이 편입학 비리로 사퇴한 사건에 이어, 김포외고에서 발각된 대규모 입시비리는 한국 교육이 앓고 있는 중병의 실체를 숨김없이 드러낸 사건입니다. 이번 비리 사건은 일부 교육자들의 범죄행위이지만 우리 교육현실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서열화 된 대학 체제의 귀결이며, 대학입시 학원으로 전락하여 파행적으로 학교를 운영해온 외국어고등학교 정책이 낳은 결과입니다.


외국어고등학교는 외국어 영재 교육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유리한 통로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학입시에 유리한 외고에 진학하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특목고 대비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외고 진학 학생 수가 학원 영업의 전략이 되어버리는 현실은 결국 외고와 학원의 검은 커넥션마저 만들어내고 만 것입니다. 외국어고등학교의 간부교사들이 학원에서 입시설명회를 열고, 학원에서는 특정 외고에 학생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교사를 매수하여 문제를 유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끊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외고 비리 사건은 또다시 터져 나올 것입니다.

이번 외고 비리 사건은 미봉책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외국어고등학교라는 제도에 대하여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동안 전교조는 외국어고등학교가 외국어 영재를 육성한다는 명목 하에 우수한 중학생들을 모아놓고 입시장사를 하는 학교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제기해 왔으며 특목고에 대한 정책 전환을 역설해왔습니다. 그러나 교육부와 청와대는 외국어고의 파행적 운영을 알면서도 묵인해왔고 미봉책으로 일관하였습니다.


밤 12시 넘어 학원 문을 나서는 어린 중학생들의 마음을 알아야합니다. 외고 전문학원에 보내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학원을 다니는 소년 소녀들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김포외고 비리는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늦은 밤을 학원에서 보내지 않도록 어른들이 고민하고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에 전교조 위원장인 저는 절박한 마음으로 오늘부터 청와대 앞에서 농성에 들어갑니다.


전 교조와 함께 진정한 교육개혁과 참교육 실현을 위해 노력해온 교육 운동 단체에 호소합니다. 외고 폐지와 특목고 정책 전환을 위한 뜻을 모아주십시오. 국민들과 함께 제 2의 김포외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요구합니다.

지금이라도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합니다. 이미 김포외고 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에서도 학원과 외국어고와의 유착 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외고를 유치하고 학교를 설립하면서 특정 학교에 수십억 원의 예산을 쓰는 특혜를 베풀어 왔습니다. 교육양극화로 교육이 계층 재생산의 도구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의 세금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 것은 분명히 바로잡아야 합니다.

2008년 대학입시제도에서 생활기록부 중심의 전형을 상위권 대학들이 반대해온 이유도 바로 특목고 유치 경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어 버린 외국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발표하였지만 결국 실효성 없는 정책을 다음 정부에서 해결한다는 용두사미격의 정책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참여 정부가 입시 혼란과 교육의 기본마저 무너뜨린 정부로 평가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고 입시 전형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이번 사태를 발생시킨 경기도교육감은 책임져야 하며 교육부와 정부는 문제의 근원인 외국어고를 일반계로 전환하는 정책을 포함한 종합적인 특목고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여 국민들에게 제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2007. 11. 14.

전교조 위원장 정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