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헌 기자

대우조선해양이 양 갈래 항로에서 운명의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회생을 위해선 2조9000억원 추가 유동성 지원이 필요하다. 전제 조건은 크게 3가지다. Δ대우조선 노동조합의 무분규 동의 Δ시중은행 채무 재조정 Δ사채권자 채무 재조정이다. 노조와 시중은행 동의는 이미 끝났거나 확약서 제출을 앞둔 단계다. 남은 건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채권자다.

키는 전체 회사채의 30%가량을 들고 있는 국민연금이다. 9일 산업은행과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의 비공개 면담, 10일 회사채·기업어음(CP) 기관투자자 설명회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오는 17~18일로 예정된 사채권자 집회는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산은과 국민연금의 입장은 여전히 팽팽하다. 쟁점은 크게 5가지다.

①분식회계 기업 지원 정당한가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지원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수년간 수조원대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을 속인 대우조선을 지원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대우조선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준비 중인 것도 이런 이유다.

산은은 분식회계와 채무 재조정은 별개라고 반박한다. 분식회계는 법적 절차로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소송으로 해결할 일이지만 정상화 지원은 국가 경제 관점에서 별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산은 관계자는 "분식회계 기업이라는 이유로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손실을 입히면서 지원하지 않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과거 옛 대우그룹과 SK글로벌도 분식회계 기업이지만 정상화한 사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②대주주 산업은행 책임 더 져야 하나 국민연금은 대주주인 산은에 더 큰 손실 부담을 요구한다. 현대상선(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한진해운(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례처럼 대주주로서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논리다. 산은 보유지분(79%) 추가 감자, 회사채 상환 보증 요구가 대표적이다.

산은은 다른 부실기업 이상으로 대주주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2015년 10월 4조2000억원 지원, 기보유주식(6000만주) 완전 소각, 4000억원 유상증자 실행분 10대 1 감자, 1조8000억원 출자전환, 이번 신규자금 지원 등이 근거다. 산은 관계자는 "오너(소유주) 기업의 계열주와 같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도 않았다"며 "민간 구조조정 기업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③산은·수은이 정상화 과실 따갔나

국민연금 등은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 정상화의 최대 수혜자라고 본다. 국책은행 담보채권이 3조원 가량 늘어나고, 선수금환급보증(RG)도 상당액이 해소했다는 것이다. 사채권자들이 사준 회사채 매입 대금이 결국 산은과 수은에 진 빚을 갚는 데 쓰였다는 게 기본 인식이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담보 숫자만 보는 데 지원 과정과 향후 계획을 큰 틀에서 봐야 한다"며 "추가 신규자금 지원과 출자전환 등을 고려하면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줄였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대주주 지원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되레 수혜를 봤다고도 했다. 산은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손 안 대고 코 푼 격으로 RG를 줄였고, 사채권자들도 법정관리에 따른 손실을 줄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④4만350원 출자전환 가격 적당한가

출자전환(채권을 주식으로 전환) 대상 주식 가격도 논란이다. 국민연금은 4만350원으로 결정된 신주 가격을 더 낮춰야 한다고 본다. 대우조선 주식이 하반기에 거래를 재개하더라도 주가가 폭락할 것이 자명하다는 이유에서다.

산은은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규에 따라 산정된 출자전환 주식 가격을 낮추긴 어렵다고 반박한다.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이 '채무 탕감' 개념의 출자전환을 '투자 관점'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본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재무구조를 개선해 부실기업 금융 비용을 절감하고, 투자자는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손실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출자전환"이라며 "기준가격 조정은 주주가 상대적 지분율에 영향을 미치고 지난해 말 10대 1 감자를 수용한 소액주주들에게 큰 피해를 초래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⑤대우조선 지원하면 정말 살 수 있나

대우조선 정상화에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6조원 안팎을 넣었으나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간 STX조선해양 사례가 재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산은은 대우조선의 정상화 여부는 실사 결과에 근거한 추정과 전제를 가지고 예상하는 것일 뿐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고 항변한다.

현시점에선 '정상화냐, 아니냐'를 비교해 채권회수율 측면에서 경제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선택하는 게 올바르다는 것이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법정관리에서 90% 이상 출자전환이 이뤄진 주식은 가치가 없고 나머지 채권도 장기간 분할상환으로 변제를 장담하기 어렵다"며 "채무 재조정은 리스크 추가 부담이 아니라 채권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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